▲ 이대호(작가)
세상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와 가치관도 옛날에 비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 바로 유행이다.

유행이라는 것!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행했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실로 우스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바뀜에 따라 대부분 돌고 도는 것이 유행이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남자들의 바지를 한 가지 예로 들자면, 과거 한때는 바짓가랑이가 너무 좁아 옷을 입을 때, 바짓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좁은, 이른바 맘보 바지를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새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이쪽 발길에 채이고, 저쪽 발길에 채여 입고 다니기에도 거추장스러운 나팔바지가 유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또 다시 맘보바지가 유행하는 새대가 돌아오고, 그리고 다시 나팔바지, 핫바지로 유행이 바뀌어 가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라고 했던가. 어느 대중가요 노랫말에 나왔듯이 유행 역시 세월에 따라 이렇게 돌고 도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바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성들의 넥타이가 그렇고, 여성들의 헤스타일이나 치마의 유행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이다.

바지와 치마, 그리고 넥타이들 모두가 시대에 따라 그때마다 유행하는 원단이 즈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저 길었다,

짧았다, 넓었다가 좁았다 하는 일을 계속 반복, 되풀이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여성들의 헤어스타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생머리를 길게 길러 곱게 빗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다가, 짧게 자른 이른바 숏 커트가 유행하기도 하고, 머리를 위로 올렸다, 내리는 일, 그리고 보글보글 볶은 퍼머넨트의 라면 머리의 반복만 있을 뿐,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 머리 스타일을 바꾼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유행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지금 만일 당신이 유행에 한창 뒤떨어진 옛날의 넥타이나 치마, 그리고 바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고 오래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보면 언젠가는 그 것이 다시 유행하여 유용하고 값지게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

유행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문득 내 어릴 적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만 해도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결같이 가난하여 먹을 것은 물론이고 변변히 입고 다닐 옷가지 역시 매우 귀했던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좀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어쩌다 옷이 비에 흠뻑 젖었을 때는 바꾸어 입을 옷이라고는 없는 오직 단 벌 뿐이어서 홀랑 벌거벗은 몸으로 하루고 이틀이고 빨아 널어놓은 옷이 마를 때까지 이불 속에 묻혀 지냈던 기억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입고 다니던 옷을 빨았기 때문에 당장 입고 활동할 수 있는 옷이 없어서 그렇게 지낼 수밖에 달리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옷이 좀 구멍이 나거나 찢어졌을 때에도 이불 속 신세를 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정성껏 꿰맴질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노라면 아무리 급한 볼 일이 있어도 자동적으로 외출이 금지되고 발이 묶이는 답답한 신세가 되곤 했던 것이다.

옷이 그처럼 귀했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덕누덕 깁고 또 기운 옷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고 다녔다. 그래서 어쩌다

깁지 않은 새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면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양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여기 저기 구멍이 날 때마다 꿰매신고 다니는 것이 예사였으며, 양말의 뒤꿈치가 뚫어져서 꿰맬 때는 꿰매기 편리하게 으레 가정마다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필라멘트가 나간 백열 전구를 양말 속에 넣고 꿰매곤 하였다.

또한 신발도 그랬다.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부모님이 큰 마음먹고 시장에 가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오게 되면, 새로 사온 운동화를 신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운동화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운동화를 아껴 신기 위해 더욱 우스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들 중의 하나가 운동화를 새로 사 신게 되었다. 그 친구는 새로 산 운동화 바닥이 닳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리고 운동화를 더 오래 신기 위해 운동화를 벗어 들고 늘 맨발로 다녔다. 그러다 사람과 마주치거나 남들이 볼 때는 재빨리 들고 있던 운동화를 신고 보란 듯이 의젓하게 걸었으며, 사람들이 없을 때는 다시 운동화를 벗어서 들고 다니곤 하였다.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가는 길은 작은 산을 두 개나 넘고 개울을 건너 시오리 길이나 되었으니 운동화를 아끼고 절약하는 방법으로 여간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새로 운동화를 사 신게 되는 친구들 대부분이 악속이나 한 듯, 그렇게 운동화나 고무신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그 당시의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참 이상하다. 세상이 너무 풍요롭고 넉넉해져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너덜너덜하게 해진 옷, 그리고 찢어진 옷과 뚫어진 옷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한 새옷을 헌옷처럼 만들기 위해 바짓가랑이에 돌을 넣고 시멘트 바닥에 문지르는가 하면, 칼로 정성껏 옷의 실밥을 뜯어내는 수고(?)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세대 차이일까? 아무리 유행도 좋지만 나이를 먹은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사람 유행이 시시각각으로 자주 바뀌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각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는 소위 로열층이라 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층을 선호하였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높은 층을 선호하게 되었고, 같은 아파트라 해도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집값도 높이 매겨지고 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집을 지을 때, 그리고 묘 자리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묘자리 하나를 정하기 위해서는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풍수지리로 이름난 지관을 불러 좌청룡 우백호니 하며 묘지리를 정하는 데 까다로운 절차도 따르고 신중을 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에 위하면 지금은 모두가 바쁜 현대를 살아가기에 명당자리가 따로 없단다.

그저 자동차를 타고 가서 쉽게 성묘를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되도록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가까운 곳이 바로 명당자리로 자리매김을 해 가고 있는 추세란다.

자주 변해 가는 유행, 그리고 세월에 따라 자주 변해가고 있는 우리들의 의식과 가치관!

아무리 세대 차이가 난다 해도, 그리고 그것들이 아무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할지라도, 이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순리이며 현명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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