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어쩌다 맹꽁이처럼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사람을 보면 몹시 부럽기만 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하다.

70년대만 해도 배가 나온 사람을 구경하기란 가뭄에 싹을 틔운 콩을 보듯 드물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 그땐 고기 맛을 보기는커녕, 순식물성 반찬으로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어쩌다 배가 나왔거나 살이 찐 사람을 보게 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만 부러워 한 게 아니었다. 부러워 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배가 나오고 살이 찐 사람을 부러워하는
데에는 그런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부의 상징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저 사람 이제 몰라보게 형편이 좋아진 모양이군.”

“그동안 제법 돈푼깨나 모은 모양이로군.”

“아암, 그렇구말구.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렇게 배가 나올 수 있겠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그런 생각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옛날과 반대로 요즈음은 배가 좀 나왔거나 살이 찐 사람들은 뱃살과 몸의 군살을 빼기 위한 전쟁으로 이만저만 고생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너도 나도 이른바 살을 빼기 위한 살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것이다. 배가 나온 사람, 그리고 살이 많이 찐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도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살이 찌게 된 가장 큰 첫째 원인은 그동안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인스턴트 식품이나 육류를 마음대로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원인으로는 섭취량에 비해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지나치게 배가 나오거나 살이 많이 찌는 것은 각종 성인병을 불러오는 지름길이라고 하니 그 누군들 살이 찌는 게 두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어딜 가나 열심히 비지땀을 흘려가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른 새벽부터 조깅을 하는 사람들, 조기 축구를 하는 사람들, 헬스클럽을 열심히 다니거나 심지어는 전문인에게 거금을 주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걷거나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하여 등산을 하는 사람들……. 운동은 이제 모든 사람들의 보편화된 삶이요, 우리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예전엔 특별히 운동선수, 또는 장차 운동선수가 되려는 목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을 빼고는 요즈음처럼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령, 운동을 한다 해도 그건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 아닌 순수한 운동 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튼튼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좀 더 나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철봉이나 평행봉을 이용한 기계 체조나 아령, 역기 등, 그리고 달리기나 마라톤, 등이 고작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북한 동포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누구나 잘 알다시피 북한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식량난으로 인해 지금 현재도 굶기를 밥먹듯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상황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보기는커녕, 비록 식물성으로 만든 부식이나마 끼니만 제때 이어갈 수 있어도 다행인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 아니던가.

실제로 얼마 전에 굶주림을 더 이상 참다못해 죽을 각오로 북한을 탈출한 어느 탈북 소년이 있었는데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더니 소년은 서슴지 않고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뜨거운 국에 하얀 이밥을 실컷 말아먹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소년의 대답 한 마디로 우리는 북한 동포들이 그동안 얼마나 굶주린 나날을 살아왔는가를 가히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북한 동포들의 대부분은 늘 굶주림 속에 날마다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매일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살이 찔 리가 없으며 살을 빼기 위해 특별히 따로 운동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기에 북한 동포들의 상식으로는 지나치게 많이 먹지만 않으면 될 일을 왜 미련스럽게 살이 찔 정도로 많이 먹고 나서 다시 살을 빼려고 야단들이냐는 것이다. 그

리고 기왕에 찐 그 아깝고 소중한 살을 왜 빼려고 야단법석들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는 것이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들 모두가 일찌기 그런 경험을 했듯, 북한 동포들은 지금 현재도 그런 과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기에 휴일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거나,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면서 헬스클럽에 가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운동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당연했을 것이다.

요즈음 세계 경제는 바닥이 어디인 줄을 모를 정도로 계속 곤두박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대부분은 너도 나도 살을 빼기 위한 이른바 살과의 전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어쨌든 아직까지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불리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날, 북한 동포들의 굶주린 삶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 그래도 배를 곯지 않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런 대로 행복하기에, 머잖아 지금보다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은 반드시 돌아오리라 확신해 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