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관광객들이 물건을 살 때, 관광객이 상인에게 묻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관광객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어느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자신의 국적을 숨기고 감추려 해도 그 나라의 민족성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은연중에 드러나게 마련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물건을 고를 때, “이게 요즘 최신 유행하는 물건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유행을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한 “얼마나 견고한가요. 그리고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인가요?” 하고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며, “이거 진짜인가요, 가짜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그건 보나마나 거의 한국 사람들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가짜를 진짜로 둔갑해서 파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까지 상인을 믿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눈감으면 코를 베어간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이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 세상으로 변했더란 말인가.

오죽하면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던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 란 노랫말이 나 자신도 모르게 문득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가곤 한다. 그야말로 양심을 저버린 지 오래이며, 날이 갈수록 기회가 없어서 남을 속이지 못하는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민담을 살펴 보면, 우리 조상들의 대부분은 아무리 가난해도, 그리고 현재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다 해도 자신의 양심만은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저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에 각박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만한 민담 한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참봉의 집에 도둑이 들었단다. 그런데 도둑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참봉네 집 살림살이라고는 달랑 빈 솥단지 하나뿐이었다.

“높은 벼슬을 가진 분이 어쩌면 이토록 가진 게 없을까?”

기가 막힌 도둑은 갑자기 동정심이 생겨 마침 가지고 있던 엽전 꾸러미를 솥 속에 넣고 참봉네 집을 나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아침밥을 지으려고 쏱뚜껑을 열어본 계집종은 그만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엽전 꾸러미를 들고 황급히 참봉에게 달려가서 들뜬 목소리로 고했다.

“마님! 이것은 엽전 꾸러미는 필경 하늘이 내린 물건인 듯하옵니다. 이 돈으로 양식과 땔감을 장만하면 한동안 궁색함은 면할 수 있을 듯하옵니다.”

계집종의 말을 듣고 난 참봉은 당장 엄하게 꾸짖었다.

“듣기 싫다. 필경 누군가가 나를 동정해서 몰래 갖다 놓은 모양이니 당장 주인을 돌려주어야 하겠다.”
그리고는 대문에 ‘당장 돈을 찾아가라’는 방을 크게 써서 붙여 놓게 되었다.

한편 도둑은 뒷일이 궁금하여 동정을 살피러 왔다가 대문에 써붙인 방을 발견하고는 계집종을 불러 은밀히 묻게 되었다. 계집종의 자초지종을 듣게 된 도둑은 그만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참봉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어젯밤 물건을 훔칠 생각으로 댁에 들어왔다가 너무나 빈곤한 살림살이로 보여 솥속에 몰래 엽전 꾸러미를 넣고 사라졌던 사람입니다. 오늘 이처럼 어른의 거울 같은 양심을 보니 제 자신 몹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소인은 오늘부터 당장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참봉은 그런 도둑을 보고 야단을 치기는 커녕, 좋은 말로 훈계하여 돌려보내게 되었다. 후에 그 참봉의 손녀가 바로 헌종의 비가 되었으며, 그가 곧 명헌왕후였던 것이다.

'바다보다도 웅대한 광경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도 웅대한 광경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인 것이다' <V.M. 위고/ 레미제라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