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해마다 봄이나 가을이 돌아오면 각급 학교마다에서는 연례 행사로 앞을 다투어 소풍 행사를 실천해오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풍이란 말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대신 ‘현장 학습’ 이란 말이 자리잡게 되었고, 요즘은 소풍이란 말보다는 현장 학습이란 말에 더욱 익숙해진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만 해도 소풍이란 말보다는 원족(遠足)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자의 뜻 그대로 발로 멀리 걸어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요즘은 여간해서는 걷지를 않고 기차나 버스, 승용차, 그리고 때로는 비행기를 이용하여 먼 거리를 오가는 편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옛날 원족이란 말은 더구나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소풍은 1년 열두 달, 매일 교실이란 비좁은 공간 속에 갇혀 공부에 시달려 오던 학생들에게 그날만큼은 전혀 새로운 환경의 산과 들, 그리고 고적이나 문화 유적지를 찾아 바람도 쏘이게 하고, 자연 관찰의 기회를 주어 앞으로 보다 나은 학습 능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게 소풍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풍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아주 오래 전, 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너무나 감동적인 실화 한 토막이 문득 떠오른다.

어느 봄날, 그 학교에서도 소풍을 실시하게 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각 학급마다 담임선생님의 인솔하에 들길과 산길을 정답게 오르내리면서 들뜬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학생이 길가에 자라고 있는 풀잎 한 개를 뜯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담임선생님 앞으로 달려왔다.

“선생님, 이 풀 참 이쁘죠? 이 풀 이름이 뭐에요?”

어린 학생이 들고 온 풀잎을 한동안 자세히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은 실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풀의 이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세, 이게 무슨 풀인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 걸. 그러니까 이 다음에 선생님이 풀 이름을 알게 되면 그때 자세히 가르쳐 주어야 하겠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담임선생님은 진실로 미안해 하면서 무안해진 기색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이 모든 걸 다 잘 아는 분이 선생님인 줄로만 알았던 어린 학생은 선생님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어린 학생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아버지 앞에 문제의 그 풀잎을 다시 내밀고 묻게 되었다.

“아빠, 이 풀 이름이 뭐야? 우리 선생님께 물었더니 모르신대. 아마 엉터리 선생님인가 봐.”

아빠는 마침 그 나라에서 이름난 식물학자였다. 그러니 그 풀의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리 낌새를 챈 아버지는 풀잎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한동안 자세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서리며 대답했다.

“글쎄다. 아빠도 이 풀 이름은 정말 모르겠는 걸.”

하면서 급히 편지지를 꺼내 한동안 편지를 써서 봉한 후, 아들에게 건네주며 내일 담임선생님께 꼭 전해 드리라고 부탁하였다.

그 다음 날이었다. 선생님은 그 문제의 풀에 대해 여러 학생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풀의 이름은 물론이고 원산지, 풀의 성분과 쓰임 등…….

그러자 식물학자가 아빠인 학생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과연 선생님은 식물학자인 우리 아빠보다도 식물에 곤한 실력이 더 많은 분이시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선생님에 대해 실망을 했던 그 학생은 그 일을 계기로 그 다음부터 더욱 선생님을 믿고 따르며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어제 아빠가 써서 선생님에게 전해 주게 했던 그 편지, 그것은 바로 그 식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적힌 편지였던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