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또 닦으면 이 검은 띠는 없어지겠지요" 검은 띠 와의 한 없는 전쟁

                                                       (동행취재기) 
굴양식으로 생계를 꾸려온 신두리마을. 이정표에 커다란 굴은 이 마을의 상징이다
오전 7시 구리시청 주차장에는 작은 약속을 다짐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이른 시간이라 검은 얼굴들이라 수인사가 쉽지 않다. 그저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 볼 뿐이다. 의제21 회원들과 25인승 버스에 오른다.

출발이란 마음보다. 그곳에 가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본다. 평소 운동량도 부족하고 엊그제 혈압이 높으니 조심하라고 의사의 이야기만 귀에 맴돈다. 혹 나로 인해 누가 되지는 않을까, 출발하는 것이 옳은지 잠시 생각했다.

시동이 걸리자 그냥 눈을 감는다. 그리곤 뉴스매체를 통한 태안의 모습을 그려본다. 기름바다. 기름띠, 수없이 퍼 담으며 진땀을 내는 사람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대재앙을.

작은 실수가 부른 대제앙의 마을 신두리에 도착

오전 10시. 태안에 들어선다. 곳곳에 걸린 현수막. “환경생태복원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문구와 “어서 오세요. 자원봉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라는 인사말들이 더욱 긴장에 쌓이게 한다. 원유가 유출된 지 오늘로 열흘째. 일단 어렵고 작업은 일단 마무리되었지만 어느 면에서는 지금부터 시작이 아닐까하는 인솔자의 설명에 수긍을 해본다.

태안 시내를 거쳐 우리일행은 ‘신두리’라는 생소한 장소에서 차를 멈춘다. 그곳은 전국 새마을관계자들이 모여 들었다. 원래 우리 일행은 이곳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지만 여건상 이곳에서 자원봉사의 닻을 내리기로 했다.

작은 사랑의 시작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옷을 갈아입고 마치 연구소의 모르모트를 찾아가는 연구자처럼 옷을 바꾸어 입었다. 이제 시작이다.

검은 백사장의 흰 마음
방파제의 검은 기름띠를 제거하는 자원봉사자들. 흰색의 희망을 주고 있다.

신두리 해수욕장은 태안군이 제5경으로 정할 만큼 작고 아름다운 포구라고 한다. 마을 입구 이정표에는 커다란 굴이 걸려있어 이곳의 생계수단이 굴양식이라는 것을 미루어 생각하게 한다. 바닷물은 여전한데, 아이의 웃음소리로 달려들 것만 같은 순수함인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느 정도 평정을 찾은 듯했다.

하긴 어제까지 10만 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어려운 작업을 마쳤다고 하니, 옷을 갈아입고 해수욕장을 바라보니 각양각색의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은 몽돌해수욕장이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검정 조약돌들이 보인다. 그런데 저마다 그 돌을 정성스레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이얀 몽돌들이 기름 범벅이 되어 검정색을 띄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쓰러웠다.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자원봉사자들. 간혹 망연자실한 모습도 보인다.
일행이 해수욕장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자원봉사자들은 주어진 역할에 한창이다. 누구는 큰 바위를 닦고, 누구는 몽돌을 쓰다듬고, 누구는 벽에 올라 걸레질을 한다. 면장갑을 끼고 고무장갑을 덧끼고 우리도 합류를 한다. 그리곤 부직포와 면 옷을 들고 몽돌을 닦는다.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언제 이 많은 돌들을 원래의 색을 찾을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한탄도 해 보지만 대략 2천명이 넘는 이들이 묵묵히 돌을 닦는 이들과 하나가 된다.
닦고 또 닦으면 원래의 모습을 찾겠지요.
살며시 바라본 반대편의 모습. 흰 방제복을 입은 무리들이 벽을 타고 있다. 흰 스파이더맨이다. 검은 띠 아니 자신들의 키보다 높은 검은 원유페인트를 닦고 있다. “도착하자 이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가 하고 오전 내내 백 여 명이 달라붙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해 보아야 하지요. 우리가 닦고 다음에 오신 분들이 또 닦아 내면 이 검은 띠는 없어지겠지요.” 새마을지도자협회에서 온 누군가는 대답을 한다.
닦고 줍고 쓸고 작은 공간이지만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곳 저것을 살피다 함께 온 의제 21회원과 새마을 지회 회원들에게 마음을을 빼앗긴다. 너무도 열심이다. 몽돌을 씻고 돌덩어리를 닦는다. 우리의 한계는 여긴가 보다. 자위를 하고 있을 때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늘어진 줄.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 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줄을 선다.

유전입니다. 유전...

점심을 먹고 몽돌과 씨름이 한창이던 시간. 갑자기 “유전입니다. 유전....” 몽돌에 정성을 들이던 자원봉사자들이 그의 말에 귀와 눈이 동그래지고 그의 손길에 눈을 멈춘다. 이제 우리의 일이 정해 졌다. 함께 동승한 구리의제21 식구들이 발견한 ‘신두리유전'을 공약한다. 바닥에서 30cm 정도만 파면 쏟아져 나오는 기름덩어리 우리일행의 오후는 그곳에서 머물렀고, 쓰레받기와 호미, 장갑으로 가름덩어리들을 퍼내기 시작했다. 사람이 부족하자 함께 하기를 독려했다.
바닥을 10cm정도만 파고들면 끈적 끈적한 원유덩어리가 나타난다.
의왕시, 의정부시 등 경기도 일원에서 온 자원봉사자들과 마을 주민은 하나가 되어 이 마을과 바다를 잇는 작은 부두의 선착장의 원유덩어리를 제거에 집중했다.

"1년에 바다농사에 전념하면 천만원은 거뜬이 벌었는데... 이제 어찌 할꼬." 망막해 하는 칠순 할머니의 푸념에 말을 잇질 못한다.

물때입니다. 물때...
멀리서 바닷물이 몰려온다. 이제 손을 놓아야 할 시간이다
부두 선착장의 원유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여러분 물이 들어옵니다. 각자가 타고 온 차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처럼 자원봉사의 일거리를 건졌는데... 짧은 겨울 해를 아쉬워하며 몽돌해수욕장을 나선다. 그리곤 일몰을 준비하는 해를 바라본다. 대 여섯 시간 짧은 봉사활동.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소리 없는 메아리를 불러본다. "신두리 주민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고.
조금(밀물)을 몰고오는 일몰.

후기-자원봉사에는 지존이 없다.

<태안바닷가 자원봉사 할 때 필요한 것들>

많은 경험과 많은 자원봉사를 통해 얻은 지식도 이번 태안반도의 기름 유출 사건에는 초보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 할 수 있다. 유출 초기에는 원유덩어리를 걷어내려고 많은 천들이 필요했지만 우리가 찾은 신두리 마을은 면제품의 천들이 필요하다. 물론 부직포가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다지 유용성을 갖질 못한다. 혹 이곳으로 자원봉사를 떠날 때는 흡수력이 좋은 면류의 천으로 돌과 벽을 닦아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참여하는 인원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돌을 들어내어 한 곳에 모으는 조, 모인 돌을 닦는 조. 원유덩어리에 싸인 모래나 조개껍데기, 작은 돌을 운반하는 조 등으로 나누는 것이 좋을 듯하다. 쓰레기 처리는 서로 섞이지 않게 작업장에서 원유덩어리와 닦은 수건 등을 분리수거를 하여 모으면 이중고를 떨칠 수 있다.

물때가 되면 바람이 차기 때문에 모자나 모자가 달린 윗도리를 입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간단한 일을 도울 사람은 굳이 방제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버려도 좋은 옷을 입고 작압에 임해도 좋다. 단, 두툼한 양말은 필수다. 자신에게 맞는 장화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면 자원봉사본부에서 빌려주나 대부분 자신의 발보다 크기 때문이다.

음식은 간단하게 준비하되 따스한 물과 국은 필수이다. 언몸을 녹이고 장을 따스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밖에 작은 수저나 경양식용 나이프도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바위나 돌덩어리 틈새에 응고된 기름을 닦을 때 좋을 듯싶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꼬리를 물고 태안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글을 닫으며 현장을 스케치한다.
봉사후의 잔재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야 이중고를 줄일 수 있다.
기름 유입을 위해 설치했던 방제막이 을싸년스럽다.
현수막은 금물. 수북히 쌓인 이것들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진종일 쎄레질 하듯 끌고 다니는 마을 주민.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우" 괘면쩍게 미소를 본낸다.
초토화 되어버린 굴 양식장.
부직포는 돌을 닦기에 부족함이 있다. 면류가 좋다.
해안가로 니르는 부산물들...
발자국에 스며든 기름 띠.
닦고 훔치고 또 딱고... 이것만이 유일한 일이다.
땅속에 스며든 기름 찌꺼기. 이제 타르가 되어 끈적끈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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