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작가)
여름철을 일컬어 흔히 바캉스의 계절이니, 정열의 계절이니 하면서 하루 빨리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여름철을 좋아하는 그런 분들에게 행여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난 한마디로 말해서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달리 더위를 유난히 몹시 타는 체질로 태어나서 그런지 나에게 여름철은 여간 괴롭고 고통스러운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몸의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잠을 잘 때, 발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고 자야 하는 유별나고 특이한 체질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아직 젊은 힘이 흘러 넘쳐서 그렇다며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 넘겨버리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토록 남의 고통과 괴로운 사정을몰라주는 것만 같아 은근히 속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겨우 여름의 문턱을 들어선 것 같은데 조금만 걸어도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기온이 점차 높아지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늘 습관처럼 달고 다니고 있는 두통이 기온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조금만 움직여도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난히 온몸에 땀이 많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어쩌다 외출을 할 때는 어김없이 손수건을 두 개씩 칭겨 가지고 다니며 이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더위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어쩌다 단정한 양복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며 한편으로는 부럽다 못해 거룩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만일 저런 차림을 하고 다닌다면 삽시간에 와이셔츠 카라가 흠뻑 젖어 당장 남이 보기에도 꼴불견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년 여름은 그 어느 해 여름철보다 유난히 더워질 전망이라며 벌써부터 모든 매스컴에서 입을 모아 겁을 주곤 한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적어도 4개월은 이런 더위가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나로서는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기만 하다.

이런 나를 보고 여름철엔 땀을 많이 흘릴수록 건강에 좋다는 말로 위로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하지만 길을 걷다가 어쩌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어김없이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이 여지없이 안경 유리에 떨어지는 바람에 앞이 잘 보이질 않게 된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안경을 자주 닦곤 하지만 금세 염분으로 얼룩진 안경 유리가 뿌옇게 되어 시야가 잘 보이질 않는 악순환이 늘 반복되곤 한다.
잠깐 볼 일이 생겨서 집앞엘 나갔다가 들어을 경우에도 온몸은 어느 새 여지없이 땀으로 흠뻑 젖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 속옷까지 모두 벗어 빨게 되는 번거롭고도 귀찮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정말 여름철마다 그런 수많은 고통을 겪는 나로서는 몹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닌 것만 같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아주 희귀하고도 특이한 내용의 광경을 방영하는 모습을 시청한 적이 있다. 대여섯 살 된 딸아이를 둔 어느 젊은 어머니가 딸과 같이 식사를 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밥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식사 전에 딸아이가 어머니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먼저 들더니 숟가락과 젓가락을 손잡이 부분을 연신 열심히 문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한동안 문지르던 숟가락과 젓가락을 어머니에게 쥐어 주었더니 어머니는 안심이 된 얼굴로 딸에게 고맙다

는 말을 하고는 웃는 낯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어머니는 희한하게도 조금 찬 물체만 손에 닿아도 금방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각기 성격과 소질, 흥미, 적성, 식성, 기호 식품 등 모두가 서로 다르듯, 체질 또한 각양각색이요, 천태만상이란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곤 한다. 그러기에 내가 잘 참을 수 있는 것을 남이 참지 못한다고 무조건 인내심이 약하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내가 생선회를 몹시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도 다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역시 어리석고 잘못된 판단이다. 전혀 회를 입에 대지도 못하고 주로 육식을 좋아하는 식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성격과 모습, 그리고 식성이나 체질이 모두가 다 똑같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불협화음과도 같은 그런 어울림 속에 조화를 이루면서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답고도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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