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시론) 구리시 소싸움 관전 소회(素懷)

 한철수(편집위원)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새벽.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덕소 우시장에 도착하자 소의 울부짖음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른 뒤 발정이 난 황소(수소)가 암소를 찾아하기 위해 팔려나온 자신의 신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뿔을 맞대고 버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TV나 언론매체를 통해 소싸움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젠가는 한번은 직접 관람해보리라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던 중 여름을 향해 달리는 6월 내가 살고 있는 구리시에서 싸움소 왕중왕 전을 한다니 왠지 마음이 들뜨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저녁이면 한강 둔치로 발길을 돌렸다. 구수하게 싸움소를 소개하는 해설자의 중계에 귀를 기울이고, 통나무 사이로 황소 두 마리의 움직임을 빠진다. 아니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것이 소싸움의 매력이다.

관계자에게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소들이 시합장으로 나오는 출입문에도 가본다. 경호원에 사정도 하여 우사도 들어 가본다. 그곳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와 며칠 간 바라본 소싸움의 작은 느낌을 적어본다.
이번 구리시 소싸움은 우리나라에서 사육되고 길들어진 1천 4백 여 두의 싸움소 중 170마리의 싸움소가 참가한 대표급 소들이 참가한 최대 규모의 소싸움 판이며 수도권에서는 최초로 열린 전국규모의 행사라 한다.

예선부터 우승에 오르게 위해서는 4~5판을 이겨야 한다. 한판에 받는 개런티는 소 한 마리당 180만원이지만 열흘 동안 먹이는 먹이 값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결선에 오르고 우승을 하면 2천만 원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니 우승한 소는 최대 3천만 원이나 된다니 소주인과 싸움소의 각오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등급은 일반 갑을병종 3개 체급, 특 갑을병종 3체급 총 6체급으로 이루어 졌다. 특갑종은 850kg부터 무제한급이며, 특을종은 850kg 이하급, 특병종은 650kg이하라고 한다.

이번 시합에 나온 최고의 헤비급은 역도산이란 이름의 소로 그 몸무게가 1,250kg에 달한다. 보통 소한마리 값이 3천 5백만 원부터 최고 2억 원까지 한다니 놀랍다.

그들이 내뿜는 콧바람만큼 열기도 대단하다. 일주일간 싸움소의 개런티가 총 4억5천만 원이며, 사용된 경비만 해도 10억 여 원에 달하는 구리시가 생긴 이래 최대의 행사라 하겠다.

수도권에서 찾아온 관객에게는 좋은 볼거리라 여겼지만 전국에서 온 소주인들과 입점주들의 마음에는 나쁜 기억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개인과 한우협회에서 주관한 행사에 구리시는 장소를 제공하고, 행사가 원만히 치러지도록 배려를 했으나, 구리시 공무원들은 행사장에 차출 된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관계자 추산 하루 평균 관람객이 3만 여명이 다녀갔으나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 볼거리를 제공한 부스가 행사장 안쪽에 위치해 입점주들과 시행본부간의 실랑이 끝에 부스를 중앙으로 옮기는 해프닝도 있었다.

뿐만 아니다  관객이 가장 몰릴 것으로 예상했던 10일 일요일의 소싸움은 원래 정오에 첫 싸움을 하기로 했지만 시합 후 바로 지불해야하는 관행을 무시한 주최 측의 처사에 소주인들은 성이났, 짐을 싸고 소를 차에 태우는 등 3시간이 넘게 소동이 있었다.

이에 성이 난 관객들은 환불소동도 일으켰다. 중계석에 있었던 카메라기사도 사라지고 야간경기에는 고정된 화면으로 어두침침한 상황에서 관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3일까지 일정을 잡았으나 아무런 해명도 없이 13일 경기는 취소되었다.

이번 소싸움은 불과 1달 만에 성사된 이벤트이기에 흥행에 실패했고 구리시의 위상이 초라해졌다는 지방에서 올라온 소주인의 말이 귀에 맴돈다.

구리시는 유채꽃과 코스모스 축제로 한껏 주가를 올렸으나 지난해 11월의 삼족오축제와 이번 소싸움 왕중왕전은 관이나 지역전문가들이 기획하지 않은 행사는 재고, 삼고해야 해야 된다.

모든 일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구리시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이름을 빌려주는 행사에 관계자들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구리시민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과연 개막식에 한 약속대로 내년에도 구리한강둔치에서 소싸움이 펼쳐질까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싸움판 들어와 의기양양했던 싸움소가 싸움에 지자 울부짖으며 나무 담을 뱅뱅 돌던 소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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