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환(경인지방통계청 구리사무소장)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우면 현명한 재상이 그리워진다는 옛 얘기가 새롭게 들린다.

황희와 함께 조선 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고, 성품이 청백검소하여 남루한 행색으로 수령의 야유를 받으면서 청백리로 기록되고 있는 맹사성은 정승 자리에 있으면서도 비가 새는 집에서 기거했다.

병조판서가 맹사성 집에 들럿다가 소낙비가 내려 방 안에 빗물이 새자 삿갓을 쓰고 관복을 적시며 국사를 논의했는데, 그 후 병조 판서는 고루거각 같은 자신의 집이 부끄러워 행랑채를 헐었다는 기록이 야사총서(野史叢書)에 전한다.

맹사성은 "현감은 악식의 참뜻을 아시는가, 조정은 물론 지방의 수령까지 만백성의 목민지관(牧民之官)이라, 모든 일에 검소할 것이며 근면과 기아(飢餓)를 몸소 체험하여 백성과 괴로움을 같이해야 할 것이네" 하고 조용히 타이르니 크게 깨우쳐 이후 선정을 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도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는 능히 목민관일 수 없다'고 했다. 목민관은 과거 수령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즘 모든 공직자에게 해당된다 할 것이다.

꽃샘 바람과 함께 청빈낙도(淸貧樂道)에 산 맹사성의 시조가 다시 들린다.

삿갓에 되롱이 입고 세우(細雨)에 호미 메고
산전(山田)을 훗매다가 녹음에 누엇스니
목동이 우양(牛羊)을 몰아 잠든 나를 깨와라.

통계조사 역시 사소한 변칙적 조사도 청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우리의 소중한 재산인 통계를 지키는 것이고, 한 두 사람이 잘못하게 되면 조직 전체가 오명을 쓰게 되고, 따라서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청렴생활의 내재화는 쉽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렴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내가 얼마나 직무에 충실 하느냐에 달려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직장에서는 조직의 구성원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청렴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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