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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묘년 새해소원은 독립운동하신 증조부님 명예 찾는 일

닉네임
정병기
등록일
2011-02-27 14:29:19
조회수
9997
2011년 신묘년 새해소원은 독립운동하신 증조부님 명예 찾는 일

새해에는 반드시 나라와 민족의 독립운동을 하신 증조부님 명예를 찾아 가묘라도 국립묘지에 안장시켜 자손된 도리를 다하능 일입니다. 지난 35년간을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데 동분서주해 왔으나 아직까지 겨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제의 만행으로 시신조차 인수하지 못해 구천을 맴도시는 증조부님의 영환을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자손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소만대로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증조부님의 독립운도을로 집안은 풍비박산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나 처가살이를 전전해며 고생을 달고 살았다빈다. 배움에서 멀어지고 살기에 고통스러웠으며 일제의 모진 감시와 탄압 그리고 박해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답니
다. 누가 그런 고통을 알수 있겠는가?

독립운동 하시다 사망하신 증조부의 명예를 찾고 싶습니다.

증조부님의 항일운동으로 집안은 풍비박산, 후손들은 머슴살이 전전하며 뿔뿔이 흩어져...
증조모님은 일제의 모진 고문과 압박 감시에 집안의 주선으로 성을 개명하여 인동장씨 집안으로 개가하셨답니다.(제정호적 인동장씨 참조))

지난 35년을 증조부님 독립운동 자료발굴에 힘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관심있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미발굴 독립운동하신 가족들 눈물겹게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지원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증손자라도 찾지 않는다면 끝입니다.여러분도 잘 아실것입니다.
행정심판에 각종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고 보도되었으도 진전이 없는 증조부님의 옥사기록은 어떻게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일본놈들에게 공짜로 옥사를 했다는 이야기인가요?

정말 죽도록 나라위해 독립운동하신 독립운동가는 자손이 없거나 무지해서 찾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제 죽어서 그분들을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동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사망기록 호적이 있어도 인정해 주지않은 현실이 안타깝고 야속한 심정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 관련 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증조부의 고향이자 부친의 고향인과 국민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증조부님이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에 살고 계시다가 독립운동으로 투옥되어 서울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하셨습니다. 증조부님의 명에회복을 통하여 자손도리를 다해야되겠다는 신념과 의지로 여러분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이제 증손자인 제가 찾지 않는다면 영원히 찾을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그냥 사장되고 말것입니다.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소 통지하여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국가유공자의 한사람으로 있는 고 정 용선 옹의 증손자입니다. 자나깨나 증좁부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지난 35여년 세월을 자료를 찾아 전국을 헤메며 다니고 있습니다. 젊음을 국가와 민족의 광복을 위하여 받치신 증조부의 명예를 회복하여 자손된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러한 시실을 알고 계시거나 아시는 자료가 있으시다면 도움 좀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경성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사망한 기록이 제적등본에 자세하고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국가보훈처에서는 또다른 자료를 요구하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형형무소가 6.25사변에 불이 나서 소실된것이 왜 가족들에 책임입니까? 그자료를 제대로 관라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힘없는 가족에게 자료를 요구하지 말고 국가보훈처에서 자료발굴 노력을 경주하여 진정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 제출된 자료에 대하여 덮어 놓고 방치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자료에 대하여 다시한번 검증을 하여 주실 것을 아울러 간곡히 당부를 드립니다.

민원을 제기한 가족에 입장에서 한번 생각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은 긴세월동안 많은 풍지평파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왔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애국지사와 애국선열들이 흘림 피의 댓가와 노력으로 오늘에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가보훈처장관님께서는 혹시 경성형무소인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보셨는지요. 그자리가 악명 높다던 경성형무소입니다. 저의 증조부께서 바로 그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신 자리이기에 일년에 몇번 그곳을 찾습니다. 가슴이 미어 터지는것 같고 분통이 터집니다. 가슴이 답답한 심정입니다.

왜 이렇게 이런 편지를 국가보훈처에 써야 하며 외쳐야 합니까?
국가보훈처에서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번에 저의 증조부 고 정요선 할아버지의 자료를 재검토하여 보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국가보훈처에서 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구호만 요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호적 (제적등본) 내용 살펴 힘없고 빽없고 줄없는 가족 발굴해야 되는지 알수 없는 일입니다. 없어진 자료를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은 잇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 보상 받을려고 했겠습니까?

국가보훈처는 찾는 노력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짐 떠넘기는 형상 언제까지 하려나... 가족들이 제출하는 관련 서류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묵살 하는것 같아 안타깝다. 제부모 제조상 같으면 이렇게 하려나 싶은 심정이다. 앞으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고 정용선 증조부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지금까지 35 여년째 증손자가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발 귀를 기울려 주셨으면 합니다.남의 일로만 생각지 마시고 관심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랍니다. 저는 저의 증조부(고 정용선)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발굴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20여년을 노력해 왔습니다만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정호적원부에 수형기록과 사망기록이 있슴에도 판결문을 찿지 못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친은 문맹인으로 살고 계시며 평생 어렵게 할아버지도 일찍 일제피박에 돌아 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로 어렵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신 분이십니다.

이미 저의 증보부자료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에 제출한지 오래이며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으로 인하여 경성형무소가 소실되고 지방에 본적지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더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행심 각하의 따뜻한 관심이 애타게 조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후손들에게 큰힘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자료는 국가보훈처 자료관리과 또는 선양과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시혜적 보훈정책 구조적 원인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가난 대물림과 배움기회 박탈, 또 계층 하락은 거꾸로 간 역사의 구조적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 차원이 아닌 시혜 차원에서 도입된 보훈정책도 가난·무지의 대물림을 고착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조부(정용선)의 호적 주소는
성명:정용선 (일명 정 재열 정차용이라고도 불리어졌다고 합니다.)
출생년월일:서기1883년12월17일생(명치16년12월17일생)
본젹지: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391번지
거주지:대정3년 충청북도 청주군 양성면 도원리3통1호
대정4년 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7통10호
경북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1062번지
전국을 무대로 독립운동(독립자금 군자금)을 담당 하였다고 함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소 통지하여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꼭 저의 증조부에 대한 기록을 찿을 수 있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모든것을 정부가 마땅히 해야 옳은것 같은데 가족에게만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생각이 듭니다.그리고 일본인이 작성한 제정호적에 수형기록이나 옥사기록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호적을 검토하여 그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전국에 국민 여러분과 공직자 학자여러분의 관심과 참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꼭 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친일문제가 청산되고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현재 그동안 찿은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나라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절대로 헛되지않게 되어야 하며 이는 단연지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연을 다시한번 살펴 보시고 자손된 도리를 다하고 일본의 의해 옥사로 단명하신 증조부님의 영혼이라도 편히 쉴실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제의 ㅊ핌략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항거하며 항일운동 중 체포되어 41세의 생을 경성형무소 감방에서 마감하신 증조부님의 명예를 반드시 찾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병기 (정용선선생의 증손자)





증조부에 대한 관심을 어린시절부터 가져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조상의 의로운 애국정신을 밝히고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을 지난 36년간 노력하여 왔으나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당시 독립우녿 하기보다 어렵다는 현실을 직감해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왔습니다. 그동안 연합뉴스.매일경제신문 서울신문,브레이크뉴스 천지일보 경남매일 양평백운신문 등 kbs1 tv 등 기타에 많이 보도되고 한바 잇고 행정소송 등 국가보훈처에 심사를 수십차례 의뢰한바 있으나 거증자료부족과 자료를 후손들에게 찾아오라고 하는 현실입니다. 일제강접기 중죄인들이 수감되는 경성형무소(현 서부지원자리)에서 옥사하셨다는 제정호적에 계출문이 기록되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광복 65주년이 오고 해도 나라위한 고귀한 희생이 잊혀지고 묻혀지며,버림받는 애국이 되지않을까 걱정도 되며 반드시 후손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에 이르고 있어 눈물만 납니다. 1928년5월20일 오후3시20분에 경성형무소 병사했다는 기록이 제정호적에 기록되어 관리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드런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작성일:2011-02-27 14:29:19 121.130.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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