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작가)
나그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해가 지고 금방 어두운 밤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초행길인 데다가
사방이 온통 캄캄해져서 길을 헤매게 되었다.

“아! 저게 웬 불빛이지?”
그때 나그네의 눈에 저 앞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들고 걸어오고 있는 등불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그네는 갑자기 나타난 불빛이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던 마음도 금
방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되었다.
힘을 얻은 나그네는 등불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맞은 편에서 등불을 든 사람도 나그네를 향해 점
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등불을 마주하게 된 나그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등불을 든 사람은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든 전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나그네는 너무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입을 벌인 채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가 묻게 되었다.

“아니, 보아하니 당신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등불을……?”
그러자 장님이 웃으면서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네,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장님입니다. 그리고 등불이 소용없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캄캄한 밤중에는 이렇게 등불을 항상 들고 다니고 있답니다.”
“……!!”

그리고 나그네가 가야 할 길을 아주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일러주고는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뜻밖의 장님의 친절한 마음씨에 나그네는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바도 많았다.


“아아! 앞을 못 보는 장님도 다른 사람을 위해 저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몸도 건강하고 두 눈이 멀쩡한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불우한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저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그 어느 등불보다도 밝은 등불이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한 경제 불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누구나 한 목소리로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봇물 같은 한숨들을 쏟아내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에겐 얼마든지 희망이 보인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금년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구세군이 모금한 성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목표를 훨씬 웃돌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이를 증
명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불우 이웃은 돈이 많은 기업가나 그 어떤 재벌들만 도울 수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수십 년간
길거리에서 고생을 하면서 포장마차를 운영하여 모은 그야말로 금싸라기 같은 돈, 가뜩이나 어려운 살
림에 신문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평생을 어렵게 바느질을 하여 모은 돈, 이런 값진 돈
들을 전액 불우 이웃돕기 성금으로 선뜻 내놓는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독지가들이 우리 이웃에는 아직
도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이런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멈추지 않는 한, 그래서 올 겨울은 아무리 모진 삭풍이 불어온다 해도
그다지 춥지만은 않은 겨울을 보낼 것만 같다.

나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으며, 어떤 일을 해 왔는가. 그리고 지금 현재는 남을 위해
어떤 등불을 들고 있으며 장차 어떤 등불을 들고 조금이라도 남을 도울 것인가를 이 겨울이 가기 전
에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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