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통한 눈물이 천년의 색을...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연도료

-옻칠과 나전칠기로 경기으뜸이, 경기기능인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
-30년을 넘게 오직 옻만 생각하고 전통과 현실을 겸비한 창작에 열중


30년을 한길로 온 권영진 옻칠공예가.

우리나라의 옻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천연도료다. 생옻의 주성분인 옻산은 효소반응에 의한 3차원 구조의 고분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져 있어 어떤 합성도료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나라 전통도료이다.

옻의 부패방지와 항균효과를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 경판이 온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옻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이나 알칼리에 쉬 녹지 않으며 내열성, 내염성, 방부성, 방수성, 방충성, 절연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내구성이 요구되는 각종 생활용품과 기물에 사용해 왔다.

오로지 옻칠로 조계사 본존불과 명동성당 종탑내부, 출입문, 창문, 십자가의 복원작업을 한 권영진 옻칠공예가를 만나 옻을 사랑하고 작업한 30여년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는 남양주시 지금동에 공방을 두고 구리시 수택동에 살며, 구리공예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오로지 손과 경험으로 옻칠을 하는 장인이다.<글쓴이 주>

-옻칠은 옻나무가 흘린 눈물이 만든 고고한 색

옻나무에 낸 상처의 진액을 조금씩 모아 생옻 칠을 한다.

1월 16일 오전.  "어젯밤 눈이 많이 와 길이 미끄러우니 오후에 오시죠." 친절한 전화 한통으로 오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남양주시 지금동 작은 공방 '봉산칠기'를 찾는다.

반갑게 맞이하는 30년을 넘게 옻칠과 나전의 외길을 걸어 온 권영진 선생은 함에 옻을 입히고 있고 선반에는 그가 만든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 

"옻나무 상처가 흘린 눈물을 모아 하는 작업이 옻칠이고 습도와 열로 조절합니다. 습이 75%, 열이 25%로 건조해야 우리고유의 고고한 색을 냅니다. 오히려 저와 같은 칠쟁이들에게는 오늘같이 습한 날이 작업하기 좋습니다. "

그는 옻칠의 본고장 강원도 원주 봉산마을에서 태어나 1970년 말부터 일명 답십리공예촌에서 나전과 옻칠에 입문하였다. 1980년은 그가 구리남양주와 큰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다. 고락을 같이 했던 답십리 식구들이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앞으로 작업장을 옮기고, 그해 결혼을 하여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금곡동에서 답십리 식구들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상품도 개발을 했으나 전통과는 조금 거리가 먼 상업적인 상품과 생옻칠이라고는 그저 하청의 수준이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죠. 10여년 이 길로 접어들어 '현실에 안주 할 것이냐 아니면 전승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냐' 큰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옻칠과 금을 소재로 한 금잔.

권 선생은 고민을 계기로 승화시켜 1987년 도농동 막자골에 자신의 고향마을의 이름을 딴 '봉산칠기'를 열고 독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때 그의 곁에 큰 스승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식이나 손자보다는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장인으로 남고 싶어...

1989년 스승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인 정수화 선생을 만나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옻칠에 전념하게 된다.

"정수화 선생님과 인연은 70년대 초에 처음 만났고 그때는 하청을 받아 칠만해주는 관계였습니다. 저의 재주를 20여년 지켜보시다가 1989년에 사제지간이 되었고, 지금까지 사사받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늘 자식과 손자가 인정하는 장인이 되기보다는 후세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장인이 되라고 독려하셨고, 그것을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옻칠장인 정수화 선생과 사제지간을 맺으며, 상업작품에서 전승공예로 전환을 꽤한다. 2000년부터 그는 각종 기능대회와 공모전에 참가하기 시작한다. 2001년 제36회 경기도기능경기대회에 참가 나전칠기부문 금메달을 거머쥐고, 그해 전국기능인대회, 한국칠공예대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그의 솜씨가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전통혼례도 보석함
찻상
5인 다기상
포도문주칠 관복함.

"2001년은 제게 있어 일대 전환기가 됩니다. 나전칠기기능사자격증은 물론 문화재수리기능인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가슴 벅찬 한 해였습니다. 이후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커졌고, 옻칠 또한 정성에 정성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 해 뒤인 2004년 경기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대상에 오르고, 다음 해 온고을전국공예대전 대상의 영예와 경기도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부문 심사위원에 위촉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경기으뜸이로 선정되는 쾌거를 얻는다.

-조계사와 명동성당 문화재보수를 시작으로 장인의 반열에 서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6호 조계사 삼존불에 옻을 입히는 권영진 선생.

각종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권영진 선생은 문화재 보수 부탁을 받기 시작한다. 조계사 대웅전 불단과 본존불, 삼존불에 새 생명을 넣어준 작업이 계기가 되어 명동성당 전면보수에 참가하게 된다.

 "조계사 대웅전에 들어섰을 때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 붓질을 할 때는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목공으로 자개쟁이로 옻칠쟁이로 살아왔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흘러가던 군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조계사 대웅전 본존불 옻칠. 
조계사 대웅전 본존불 개금후.

그는 2006년부터 2007년 2년간 그 동안 체득한 전통공법을 동원하여 작업을 마쳤고, 지금도 가끔 조계사를 찾아 웅장하게 자리를 지키는 불단과 본존불을 바라보며 목불상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고 불자들의 가슴에 선함이 남기를 기원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의 잔잔한 경험은 근대건축의 대명사이자 대한민국 민주화성역인 명동성당 전면보수에 참여하게 된다.

-일반 옻칠작업은 숙련으로 가능하지만 문화재와 외부작업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해

사적 제258호 명동성당의 출입문을 복원한 권 선생.

"성당과 문화재청 관계자들로부터 의뢰를 받고는 몇 번을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찾아가보니 그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110년 전에 축성한 성당의 보수는 종탑내부와 출입문 문짝과 문틀 그리고 십자가까지 모두 옻칠을 했습니다. 2007년 8월부터 작년 11월 까지 2년 4개월간 대장정이었습니다. 페인트를 벗기는데만 1년 정도 작업을 했고, 그 위에 옻을 입히는 방법으로 보전작업을 마쳤습니다. 지난 성탄절에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장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명동성당 종탑의 내부 옻찰전(위), 옻칠후(아래)
 

그가 종탑 내부에 도착했을 때 마치 거미줄처럼 엮인 내부의 목구조물의 인공도료를 모두 벗겨내고 초벌칠을 하면서 또 다른 천년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장인정신으로 원래는 여섯 번 칠을 하기로 했으나 워낙 손상된 부분이 많아 여덟 번 이상 칠을 했다.

"종탑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 아닙니까. 불에 강한 옻의 성질을 이용해 칠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제색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명동성당 십자가의 하단부의 옻칠작업.

내부작업은 어느 정도 숙련되면 제색을 찾는 작업이 가능하지만 문화재와 외부의 보전작업은 숙련보다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로 숙련과 경험을 지니고 그를 토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 그가 적격자였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하여 그의 옻칠이 필요한 것이다. 

명동성당 십자가의 옻칠 이 작업은 불을 이용한 공법이 시용되었다.

-미쳐야지 더 미쳐야 우리 공예에 관심을 주지요 

"이 일이요. 미쳐야 하는 일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홀대받는 전통공예에 누가 관심을 끌겠습니까. 이제 완전히 미쳐버릴 것입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덜 미쳤고 아직 미쳐야 할일이 남아있음을 암시한다. 그와 두 시간여를 만나 이야기를 마치고 권 선생의 은은한 성격과 옻이 주는 은은함이 참 궁합이 잘 맞는구나 하며 공방을 나선다.

햇살이 맑게 드러났고 추녀에는 고드름이 맺혔다. 잠시 배밭에 눈을 돌린다. 까치와 들고양이가 나란히 눈밭을 거닐고 있다.

종교를 초월한 옻공예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을 때 저 전원의 여유로움처럼...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전통과 전승공예가들에게도 저 여유로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늘에 던진다.

권영진 공예가의 주요 경력

포도동자문함. 권영진 작.

 

 

 

 

 


-제36회 지방기능경기대회 경기도 나전칠기부분 금메달(2001)
-제36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2001)
-2001년 한국 칠 공예대전 입선(2001)
-문화재 수리기능인 자격 취득 (2765호 칠공. 2001)
-제27~29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2002~4)
-제33회 전국공예품대전 장려상(2003)
-제5회 경기도 우수관광 기념품 공모전 대상(2004)
-제3회 옻칠공예대전 입선(2004)
-제22회 대한민국 신미술 대전 특선(2004)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입선(2005)
-제8회 한국문화재 기능인 작품전 장려상(2005)
-경기도 으뜸이 선정 옻칠 및 나전칠기 부문(2005)
-경기도 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심사위원(2005~7)
-제10회 전국 온고을 전통공예대전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 2005)
-제5회 한국 옻칠공예대전 은상 수상(2006)
-조계사 대웅전 서울유형문화재 제127호 불단, 서울유형문화재 126호 본존불(2006~7)
-천주교 명동 대성당 사적 제258호 옻칠 복원 작업(2007~8)
-제6회 원주시 한국 옻칠공예대전 입선(2007)
-제1회 불교 용품공모전 입선(2008)
-제7회 한국 옻칠 공모전 특별상(2008)
-서울산업대학원 전통공예최고위 전문가과정 수료(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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