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선수, 육군장교, 50회 사법고시 합격...대기만성 보여줘

제50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송진호(38세)

우리나라에 사법고시 제도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제정된 '고등고시령'에 의하여 창설되어 소위 고등고시라 불렀다. 

사법과(司法科), 행정과(行政科) 1954년 신설된 기술과(技術科)의 3과로 나누어졌다. 1961년 제정된 '공무원고시령'의 신설로 기술과가 폐지, 1963년 4월 17일 행정공무원의 자격고시제가 없어지자 행정과시험은 '3급공무원 공개채용시험'으로 되었고, 같은 해 5월 9일자에 공포된 '사법시험령'에 사법과시험은 "사법시험"으로 남아 오늘에 이른다.

사법고시의 합격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하고 싶어 했던, 그리고 도전후 자신 능력의 한계를 가름해보는 남녀의 진취적인 기상으로 대변되는 시험으로 목표당성이 가장 힘들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한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이가 구리시 교문1동에 살고 있어 그를 만나본다.

제1차 2월 27일 시험과 4월 16일 발표, 제2차 6월23일~ 26일 나흘간의 시험과 10월 21일 합격, 그리고 11월18일 ~ 21일 3일간 시험과 지난 25일 최종 관문을 통과한 자랑스런 구리사람 송진호 씨를 만나 38년의 삶과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포부를 들어 본다.<글쓴이 주>

-교문도서관은 고향처럼 편안한 곳...오늘의 영광이 있게 해준 고마운 곳

송진호 씨와 만날 곳을 묻자 '교문도서관이 무척 편안하니 그곳에서 만나자' 하여 2층 도서관사무실에서 사서와 함께 수인사와 차를 나눈다.

“교문도서관은 내 자신의 꿈을 이루게 만든 가장 편안한 장소이다. 시험이 두 주전에 끝났지만 습관처럼 도서관을 찾는다. 요즈음에는 중국어를 공부한다.”

첫 인사를 대신하고 그가 가끔 하늘을 보았다는 옥상 휴게실로 장소를 옮긴다. 오랜 군생활에 익숙해 보이지만 날카롭기보다는 순수해 보이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송진호 합격자가 진솔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다.


-33년 전 구리사람이 되었고,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꿈꾸어

송진호 합격자는 38년전 아버지 손재승 님과 어머니 강옥련 님 사이에 3남 중 장님으로 태어나 5살 되던 1970년 구리로 들어와 초등학교 5년까지 인창초교를 다녔다. 하지만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의 광희초교로 전학을 간다.

“태권도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만방에 이름을 날리는 것을 소망했고, 열심히 운동에 전념을 했다. 동성중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을 했지만 2학년 때 불의의 사고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소년 송진호는 운동을 그만 두는 시점을 다른 계기로 삼아 공부에 열중한다. 가정형편을 고려한 그가 정한 목적지는 육군사관학교로 바뀐다. 하지만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간직한 검사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육사졸업, 정치학 석사, 육군 소령 예편... 마지막 꿈을 이루어

“성동고에 입학하면서 정말 지독하게 공부했습니다. 한번 목표가 설정되자 파고드는 것은 아마 부모님이 제게 준 근성인가 한다. 어린 시절 운동을 계속하지 못한 것이 제게는 새옹지마가 된 것 같다.”

좌절을 새로운 꿈으로 이은 청년 송진호는 육사 50기 입학과 졸업, 소위로 임관하여 7사단에 배속을 수색대(보병) 소대장, 중대장, 사단참모를 거쳐 2007년 2월 28일 소령으로 예편한다.

“군 장교시절 짬짬이 시간을 내어 어린 시절 꿈을 뒤 돌아 보았다. 가슴 속 한가운데 남아있는 응어리가 있었다. 별을 다느냐 아니면 아이들과 부모님께 마지막 희망가를 들려줄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시간 고민을 했다.”

젊은장교 송진호는 선임장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과정도 밟았다.

-석사과정에서 대만인 유학생과 부부의 연을 만들어

연세대학원 석사과정은 그의 인생에 있어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내 황의순을 만나 부부가 되었고 세 아들을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룬다.

“아내는 대만출신으로 학부생으로 우리나라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아내와 둥지를 틀고 동혁(6세), 동희(5세), 동주(1세) 3형제를 두고 있다. 동주는 제 스스로 복덩이라 생각한다. 2차 시험 두 달전인 4월에 태어났고, 아이의 성장과정이 제 시험과정과 겹쳤기 때문이다.”

그는 셋째 아들이 행운을 불러 준 것이 아닌가하며 작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숫자 50돠 연관이 깊다. 육사도 50기, 사법시험도 50회에 입학과 합격은 우연의 일치(?)라 하기에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긍정적인 사고를 지녀야 누구든 목표에 달성,,, 중국관련 법조인이 되고 싶어 

중국관련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송진호 씨.

“사법시험은 누구나 인정하는 힘든 시험이다. 공부자체가 힘들고 괜한 도전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또한, 장교로도 충분히 성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부모님과 아내, 묵묵히 뒤에서 후원하여준 진민, 준학 두 동생과 그리고 아이들을 떠올리며 정말 기계처럼 마인드콘트롤을 했다.”

그는 공부는 타고난다고 보지 않는다. 공부에 전념하면서 힘들고 괴로워도 늘 ‘잘 될거야’를 읊조렸고, 슬럼프를 짧게,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

그가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때 부터 꿈을 지닌 검사였다. 비록 이번에 합격자 명단에 올랐으나 연령제한(35세)에 걸려 우선은 변호사를 개업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내가 대만인이다 보니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가 된다면, 중국관련소송과 중국이주민들을 위한 변론을 하고 싶다. 앞으로 법조 일원화가 되면, 검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그때 검사로서 중국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싶다.” 

한 시간여 송진호 합격자와 만나며, 행운은 노력하는 자의 곁에 늘 서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다복한 가정이 행복을 물어다 준다는 평범한 진리와 대기만성의 의미를 되새겼다. 

진정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변화를 기회로 삼은 송진호 합격자와 가족에 축하를 보내고 법조인으로서 그의 소망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김태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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