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정원은 마을사람들이 기획하고 가꾸게 해야 해

"쌈지공원이 생각나네요. 지금이야 전국에 참 많은데, 그땐 그거 하나 만들기도 참 어려웠어요. 자동차도 못 들어가는 공원 입구를 들어가야 했어요. 그 근처에 수녀님들이 달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돌봐 주는 보육원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이 놀이터 생겼다고, 하도 좋아하며, '장관님 놀이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이에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삐뚤삐뚤, 맞춤법도 안 맞는 글을 써서 입구에 붙여 놓은 겁니다. 그 때 그걸 보고 내가 울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누가 커다랗게 화려한 플래카드를 걸어 놨더라면 아마 부끄러웠을 겁니다. 당시 고건 시장은 한번 울었는데 난 세 번 울었습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교수의 한 회고록에서 나온 말이다.

도대체 쌈지공원이 무엇이길래 문화부장관을 한번도 아닌 세 번이나 울게 만들었을까. '큼'의 만족보다는 '작은' 충만이 준 카타르시스에서 온, 있는 자의 포만감보다는 소외된 이들의 전해준 뜨거운 마음의 보답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의 관심도 없이 온갖 잡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찬 골목의 자투리땅에 산꼭대기의 공터에 생명이 싹트는 공간으로 변화란 당시로선 쉽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쌈지공원이란 1966년 미국최초의 '포켓파크(Pocket-Park)'인 뉴욕의 팔레이공원이 모델이라고 한다.

도심 빌딩 숲에 세워진 이 공원은 아주 작은 공간에도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 수 있다는 성공적인 시발점이 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1990년 우리나라에서도 포켓파크를 한글화하여 '쌈지공원'이라 부르며 첫 삽질을 했으니 어느덧 18년이 흘렀다. 

그후 지역실정에 걸맞는 여러 가지 모델이 나왔고,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뒤 단체장들은 앞다투어 쌈지공원 조성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쌈지공원이 갖고있는 특색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관주도 녹화사업이 최선인 양 조성하다보니 나무는 말라죽고 잔디는 한해 겨울도 넘기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흉물로 쓰레기장으로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뿐만아니다 정쳬를 알 수 없는 수입품종 일색으로 꾸미다 보니 여기가 거기인 것 같고 저기가 여기인 것 같은 천편일률적으로 꾸민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투리로 불리는 작은 땅에 쌈지공원을 만드는 일은 관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십 수년간 연구한 환경전문가의 답이다.

쌈지공원은 그 이름처럼 친근하게 샘터,마당,평상을 연상시키는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맛이 있어야하며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져 쌈지공원보다는 '마을마당''골목정원'으로 부르는 곳이 더러 있다. 

쌈지공원이든 마을마당이든 마을사람들이 직접 설계하고 참여하고 가꾸고 감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시설위주가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행되어야 하며, 장소의 특색에 맞게 이름을 붙이면 금상첨화겠다.

예를 든다면 '은행나무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있는 풍경',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꾸미는 공간', '들꽃이 마냥 좋은 마당', '보호수와 까치가 있는 쉼터', '개울이 살아 숨쉬는 아이들 놀이터', 등등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골목안 사람들의 순수한 고민으로 '마을마당'으로 꾸미는 것 또한 중요하다하겠다.

구리남양주에는 유휴지형태의 자투리땅이 아직 많이 있다. 활용할 가치가 있는 곳을 동네사람들에게 공간을 비워주고 그 공간을 그들에게 채우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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