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건너다보지 않은 미개척분야를 개척한 골목대장

-첫 연구는 지렁이 그러나 거미의 유혹에 평생을 바쳐
-'아라크노피아'는 김박사가 꿈꾸는 '거미의 천국'


거미박사 김주필.
남양주시 두물머리 철로 위에는 중앙선 열차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나간다. 40여년 을 오직 거미에 미쳐(?)산다는 김주필 거미박사를 만나러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산길을 간다. 두물머리 진입로부터 박물관까지 초행이라 10리도 되지 않은 길이 멀게만 느껴지고 그와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 할지 상념에 빠진다. 길가에는 웃자란 엉컹퀴, 매발톱, 금낭화가 제 색을 내면서 나그네를 반기고 불두화도 야구공만큼 동그랗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라크노피아, 주필거미박물관'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아라크노피아(Arachnopia)는 직조기술이 뛰어난 거미를 뜻하는 '아라크네(Arachne)'와 '유토피아(Utopia)'를 김주필 박사가 합성하여 만든 '거미의 천국'을 말한다.

아라크네(Arachne)는 리디아에 사는 염색(染色)의 명인 이드몬의 딸로 길쌈과 자수의 명수였다. 사람들은 아테나여신이 직접 그녀를 가르쳤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라크네는 그것을 부정하며, 자신의 솜씨가 여신보다 더 나을 거라고 뽐내다 자만심으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여 거미가 되었다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안내자에게 "박사님을 뵈러 왔습니다." 잠시 전화 통보가 되고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어린제자 둘과 반가이 맞이한다. 천하장사 같은 풍채에서 잔잔히 흘러 배어나오는 김주필 거미박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주는 모습에서 자상함이 배어난다. 박물관 전경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거미박사의 가장 인간적인 삶과 거미 예찬을 풀어본다. <글쓴이 주>

-왜정시대 부농으로 한국전쟁을 기해 월남(越南) 자립심 키워

박물관 안에는 각국에서 채집한 거미와 희귀한 화석, 생물로 가득 해.
거미박사 김주필은 황해도 연백군 용도면 안정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향(本鄕)은 한반도의 중앙부를 동쪽의 멸악산과 서쪽의 구월산을 잇는 멸악산맥이 가로지르고 그 사이에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다. 연백의 쌀은 질이 뛰어나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 질 만큼 유명했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장작불에 쌀밥을 짓고 숯불에 생선을 구워 반찬으로 먹는 곳‘이라 일컬을 정도로 어린 주필은 윤택한 생활을 했다. 엄격하신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당에서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떼고, 천태초등학교 안정분교에서 신식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정말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당시 집에는 농사일을 돕는 사람이 십 여 명이 상주했는데, 저를 교대로 학교까지 업어다 주거나 데려다 주었죠. 그래도 1,2학년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단속을 했지만 3학년부터는 읍내로 나갔으니 그 먼거리를 그분들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쌀부잣집 도련님은 학교 공부보다는 평야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고기잡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해방을 맞이하자 소위 부르주아적 계급에 속한 주필의 가족은 많은 시달림을 겪게 된다. 그즈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주필은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야밤을 틈타 월남한다.

그들이 안착한 곳은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보통리 부근이다. 아버지와 헤어진지 7년 만에 아버지와 조우하고 아버지가 근무하던 여주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주필은 일반 아이들보다 서너 살 위로 별명은 '할배'였다. 큰 덩치에 나이도 많았으니 그 별명은 당연시 여기고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할배'라고 부른다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만나고 우리가족은 작은 안정을 취하고, 내심 지니고 있었던 악동의 기질이 뿜어져 나왔지요. 보통리 학동에서 양촌을 오가며 참외서리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곳에 아무개교회 장로가 재배하는 참외밭이 제일 컸는데, 그분이 교회에 가는 일요일은 그야말로 개구쟁이들의 서리 천국이었죠."

청소년 주필은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장사였고, 그의 말에는 복종하는 골목대장이었다고 술회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어려웠던 50년대 말과 60년대 초를 배재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시절을 마감한다.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당시 가정교사를 하면서 독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는데, 그때 아마 개구쟁이와 골목대장의 기질은 사라지고 독립심이 강한 청년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시절 지렁이 연구로 청계천에 빠져

젊은 제자들에게 타란튤라를 손에 올려 놓고 거미자랑을 늘어 놓는 김박사.
고교재학시절 전교에서 수석을 다투는 인재로 성장을 하였고, 마침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물분류학과에 입학하고 이곳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다.

"당시 동물분류학과는 유전공학을 위주로 수학을 하지, 분류생태는 전무했지요. 분륙생태학은 동물학의 기본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지렁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발표되고 3차 산업 위주에서 2차 산업으로 국부를 위한 도약이 시작되자 이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겠구나. 엄청난 재앙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앞섰지요.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선진국의 사례도 많이 접했습니다."

지렁이의 생태는 썩은 하천과 초지, 그리고 갯지렁이로 크게 분류가 된다. 청년 주필은 복개 전 청계천을 자주 방문하고 메탄가스를 맡으며 그 심각성을 더욱 느꼈다고 한다. 한참 지렁이에 빠져있던 중 그의 눈을 환히 트이게 하는 동물이 있었으니 바로 '거미'다.

-거미는 방탄복, 마취제, 소화제 최첨단 소재로 충분해

표본실의 거미들. 100여개국에서 채집한 약 20만 개체 보유. 
대학원에 입학하자 본격적으로 거미에 파묻히는 생활을 한다. 김 박사의 말을 빌리면, 생태는 늘 진화하기 때문에 그 줄기도 심층생태학, 나노생태학, 유전공학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중 분류생태학과 심층생태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기에 거미를 통한 깊은 연구에 들어간다.

"처음 거미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자 동료들은 물론 가족들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았지요. 첨단과학과 어울리는 학문을 놔두고 무슨 엉뚱한 짓이냐며 갖은 조소를 보냈으나 제 고집이 어디 보통입니까. 거미연구는 거미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거미줄에 있지요. 거미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소재입니다. 이미 거미줄을 이용한 방탄복도 나왔고, 앞으로 미사일도 막을 수 있는 최첨단소재는 거미줄밖에 없습니다. 아주 대단한 놈이지요."

하고는 허허허 웃는다. 뿐만 아니다. 거미의 독은 전혀 부작용이 없는 천연마취제로 국부마취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거미의 소화기관에 있는 분비물은 소화제로 개발하고 있는 의학적으로 아주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미야말로 청청 무농약 해충퇴치방제의 첨병

산책길에서 만난 부전나비 유충을 다루는 김박사와 제자들.
"일반 사람들은 거미를 무척이나 두려워합니다. 하긴 생김새가 그다지 정겹지는 않지요. 하지만 거미야 말로 생물학적 방제의 첨병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미 중 독이 지닌 녀석들은 단 한 개체도 없습니다. 파리, 모기는 물론 바퀴벌레까지 퇴치 할 수 있는 것이 거미입니다."

김 박사의 거미 극찬이 이어진다. 우리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말꼬마거미, 산왕거미, 집왕거미, 갈거미, 농발거미'가 대표적인데 농발거미는 바퀴벌레의 천적이며, 나머지들은 모기와 파리를 박멸하는데 최고라 한다. 그리고는 집안에 거미줄이 있는 것을 흉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 거미줄이야 말로 인체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 청정방제라고 힘 있게 말한다.

-거미가 서식하는 나라는 다 돌아보아

세계최초, 세계최고를 향해 달리는 주필거미박물관 '아라크노피아(거미의 천국)'. 4만여평에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다.
거미와 곤충에 빠진 그는 아내 진소연 씨와 22년 전에 혼인서약을 한 늦깎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인생의 반려자일 뿐 아니라 거미연구의 숙달된 조교라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미채집과 연구로 인해 그의 곁에서 아무 말 없는 도와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영원한 동반자로 1백여 나라를 함께 다니면서 아직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한다.

"일년에 보통 4~5개월은 거미채집 차 외유를 할 때가 많습니다. 한 30년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20만 개체를 채집하여 이곳과 새로이 개설한 양수리박물관에 모두 개방할 예정입니다. 처음에 거미에 관심을 두었을 때는 우리나라의 거미의 종류는 170종정도만 학계에 발표되었지만 지금은 700종에 달합니다. 아마 온난화와 아열대성기후로 바뀌는 시점에 한 미발견된 종까지 합치면 1,000종 정도는 되지 않을까합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거미의 종류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신종과 미발견 종까지 합치면 1,000종에 달한다는 이야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거미박사도 두려워하는 녀석이 있다.

"대게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녀석들은 주로 호주와 미국 쪽에 있는데, 검은과부거미(학명: Black Widow Spider)와 등붉은꼬마거미(학명:Red Black Spider)를 손꼽고, 박물관에서는 인디언오노멘털(학명:Poecilotheia Regalis)을 가장 조심스럽게 다룬다고 한다. 한참 거미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젊은 제자들이 관람을 마치고 돌아왔다. 김주필 박사와 함께 박물관으로 들어가 거미들을 직접 상면하기로 했다.

-'한국땅거미' 세계최초 발견, 학명에 140종을 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거미연구에 미치게 한 '한국땅거미' 표본. 이를 계기로 140 여종의 학명에 자신의 이름을 들어 감.

박물관 안에는 온통 희귀한 거미와 화석, 동물들로 가득했다. 그가 우리를 이끈 곳은 보기에도 혐오감이 앞서는 타란튤라 종류 중 한 녀석을 집어 손에 올리고는 제자의 손에 올려놓는다.

"이 녀석이 요즈음에 애완용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녀석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청각이 발달해 고함을 지르거나 손가락으로 충격을 주면 공격적인 자세를 가끔 취하지만 손을 넓게 벌려 살살 다루면 아주 온순해 집니다. 혹 물렸을 때는 빨리 해독제 주사를 맞으면 괜찮고, 거의 물지 않기 때문에 애완용으로 그만입니다."

그리고는 거미의 겉모습과 습성에 따라 '골리앗버드이터'를 '뚱보', '윌리안로즈에어'를 '춘향이', '인디언오너멘탈'을 '발발이', '엔트라리오스'를 '향단이'...정겨운 별명을 써 붙이기도 했다. 박물관 중앙 한쪽에 설치한 한국땅거미를 표본에서는 잠시 이야기를 끊는다.

한국땅거미 표본.
"바로 이놈입니다. 거미학명에 제 이름을 최초로 새긴 녀석이... 한국땅거미(학명: Atypus Coreanus KIM. 1985)... 바로 이곳에 정착하게 만들었고, 30여년 거미에 미치게 한 근간이 된 녀석이지요. 또 잊지 못하는 것은 98년에 발견한 연천물거미서식지를 제412호로 지정하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그를 지금의 위치로 이끈 한국땅거미를 거미박사와 한참을 바라본 후 각종 공용화석과 동식물 화석의 이야기를 듣고 2층의 곤충 표본실, 장승공원, 조각공원을 비롯 생태학습장을 2시간여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외고집 김주필 박사는 그저 오랜 시간 사귄 아저씨 같아 은근히 정들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며 뒤 돌아 보자 건물 벽에 "세계최초, 세계최고 거미박물관"이 낯설지 않다. 온통 여름을 재촉하는 꽃들이 만발하고 꽃더미 속에 숨어있는 거미줄과 거미들이 하나의 자연으로 느껴진다.
거미박물관 2층의 곤충표본실.
[이용안내]주필거미박물관(이라크노피아)생태수목원:031-576-7908, 양수리주필거미박물관:031-576-7909 홈페이지:www.arachnopla.com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세정사 옆),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