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보다는 가족의 달이 어떨까

▲ 한철수 편집위원
5월 신록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시간에 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온 배꽃이 달빛에 성근 모습이 사라지자 어느새 5월 귀빈 모란이 커다란 꽃잎을 벌리며 자태를 뽐내고 아카시아는 향긋한 내음을 준비하고 있다. 잠시 머물러 모란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다.  

5월을 맞이하고 오늘이 6일이니 한주가 슬그머니 사라지려 한다. 우연히 달력 앞에 서서 날짜 아래 적힌 날들의 의미를 살펴본다.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과 입하, 12일 부처님오신 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16일 5.16 군사구테타, 18일 광주 민주화의 날. 19일 발명의 날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과 소만, 25일 방재의 날, 26일 물의 날, 31일 바다의 날과 세계 금연의 날 등등 여느 달보다 기념일이 많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하긴 5월에는 어린이, 어버이, 부부, 성년을 위해 특별히 기념하는 날이 있으니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5월이 가정의 달로 부르게 된 것은 ‘어버이 날’에서 왔다고 한다. 1956년 어머니날로 정한 것을 왜 아버지의 날은 없는가라는 아버지들의 반란(?)이 시작되자 73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기념하자고 해서 어버이날로 바꿨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성급하게 친 동그라미 속에 11일 결혼기념일, 24일 어머니 생신 우리 가족만의 기념일이 덤으로 적혀있다.

2008년 5월 6일. 정해진 순서도 없는데 시간에 따라 변화를 주는 꽃들의 향기에 따라 적힌 기념일들 속에서 우리 가족의 5월을 되돌아본다.

아내와 만난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던 야속한 시간 속에 서로 엉클어진 지 22년째 되는 날이 11일에 있다. 서양에서는 결혼기념일을 1주년부터 60주년까지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22주년에는 특별한 선물이나 기념할 만한 구실을 없어 올해도 평소처럼 이벤트 없이 그냥 보내려한다. 아내가 서운할지 모르지만.

올 5월이 주는 의미 중 가장 큰 것은 아내와 혼인서약을 한지 22년이라는 세월 지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이고, 그렇게 만나 결실을 맺은 큰 아이가 지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세 번을 치렀고, 둘째아이가 첫 투표권을 얻는 성년의 나이가 되어 국회의원선거에서 한표를 던짐으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는 것이 두 번째이고, 늘 어리광스럽던 셋째 아이가 중학생이 승급했으니 세번째 의미이있는 일이다. 

이제 두 아이가 성인 공간에서 경험하고자 하는 일들을 맘껏 공유하니 귀가가 가끔은 늦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늘 건강이 염려되는 어머니의 일흔 세 번째 생신이 돌아오니 평소보다 세 가지의 특별함을 지닌 우리 가족만의 2008년 5월이다.

어느 가족이던 자신들만의 기념일을 적은 달력을 보면서 어찌 5월만 특별히 가정의 달이라고 고집스럽게 부르고 싶지는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달이 그려놓은 동그라미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는 기념일이 매달 다시피 하니 일년 열 두 달이 가족을 위한 달이 아닐까.

2008년 5월. 왠지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단어가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 가정(家庭)은 피붙이의 식구라는 의미보다는 집 울타리 속에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 한 생각이 드니 더욱 그렇고 우리의 방식보다는 왠지 서양적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가족(家族)은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을 이룬 사회구조의 가장 기초적인 집단이라는 것이 동양적인 사고에 비중을 두고 싶다. 가정은 가족을 감싸는 울타리 또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크고 가정은 인간적인 면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가정의 달보다는 ‘가족의 달’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억지도 부려본다. 창을 연다. 거리를 감싸던 비바람 소리도 사라지고 천마산 꼭대기가 파란 문을 열니 하늘이 싱그럽다. 우윳빛을 내는 구름 속에 글씨를 써본다. ‘가족, 家族, family, 식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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