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은 세 사람에게 한꺼번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라고 <M.고리키>는 말하였다.

그 첫째는 욕을 먹는 사람이요, 둘째는 그 욕을 전하는 사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상처를
입는 자가 바로 욕설을 퍼부은 당사자라고 하였다.

요즘은 어딜 가나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가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살
피지 않는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심지어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까지 입만 열었다 하면 습관처럼 심한
욕설이 서슴없이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 요즘 세태인 것 같다.

또한, 심한 욕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욕이 나올 정도로 몹시 화가 났거나 흥분한 것도 아니
며, 일이 크게 잘못되어서 하는 욕설도 아니다. 그저 웃는 낯으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욕설은 어렵지 않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계속 튀어나오곤 한다. 그런 걸 보면, 욕설이 이미 일상화되고
습관화가 되어 굳어버린 지 이미 오래인 것 같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 수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안타깝게도 바른말, 고운
말 사용은 고사하고 욕설이 난무하다 못해 홍수를 이루고 범람하는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욕설이 심하기는 드라마나 영화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욕설이 꼭 필요한 특정한 드라마나 영화에
서만 어쩌다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이 빠지면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가
치가 떨어지기라도 하듯, 앞을 다투어 심한 욕설이 판을 치곤 한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욕설은 그나마 애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나랏일을 맡아 하고 있는 신성한 국회에서도 툭 하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이 난무한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여기서 욕설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불교 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평소 석가모니의 행동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나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사나이가 다가와 공연히 석가모니를 헐뜯고 갖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나이는 더욱 약이 오르고 화가 치밀었던지,
더욱 심한 욕설을 하면서 석가를 때리려고까지 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래도 석가는 여전히 태연하였다.
곁에서 이를 보다 못한 제자 한 사람이 석가에게 말하였다.

“저렇게 무례한 놈을 그냥 두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러자 석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일, 어느 누군가가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그 선물을 한사코 받지 않는다면, 결국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지?”

“물론 선물을 주려고 했던 사람의 것이지요.”

“그렇구말구. 저 사나이가 내게 많은 욕설을 퍼부었지만 난 하나도 받지 않았거든. 그럼 그 욕은 누구에게 돌아가지?”

석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사나이는 금세 얼굴이 벌개져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대호(작가)

그러자 석가가 다시 입을 열어 천천히 말하였다.
“욕이란 한갖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야. 하늘에 대고 침을 뱉으면 하늘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기 얼굴에 떨어져 자신의 얼굴이 더러워지게 마련이거든.”
“…….”
석가의 말을 들은 제자 역시 얼굴이 벌개진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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