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꼭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

몇 해 전 특별히 일거리가 없어 가까운 후배의 사무실에서 소일거리를 찾던 때가 있었다.

함께 하던 신문사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문을 닫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함께한 광고기획 사무실에서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아 책이나 보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원고나 정리하며, 후배의 요청에 교정이나 도와주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생각나는 대로 보는 대로 적어두었던 비망록을 뒤지다 2005년 1월 5일에 쓴 재미난 글이 눈에 띄어 소개한다.

갑신년 양력 구랍. 2004년 12월 31일. 후배가 운영하는 사무실을 딸기원으로 옮겼다. 저녁 6시 쯤 부랴부랴 이삿짐을 옮겼기에 주변 경관을 돌아 볼 시간이 없었다.

사방이 막히고 햇살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먼저 사무실은 창을 열어도 바람 한 점 살결에 와 닫지 않아 콘크리트 상자 속에 갇힌 조각상이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나흘. 이제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가 생겼다.

문을 열고 나오면 살얼음을 가르는 실개천 물소리, 공장을 지키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쩌렁쩌렁한 소리, 까치와 멥새의 지저귐, 간혹 짝을 찾는 들고양이 소리…. 그 중에 가장 귀의 옜음으로 남는 것은 바람에 쓸리는 낙엽소리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나른함이 몰려오면 밖으로 나가 사무실 주변을 서성이거나 혹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가끔 바라보곤 했다. 오늘 바라본 하늘은 가을을 연상하게 하는 푸른빛이 돌고 마치 깊은 가을의 쪽빛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뭉게구름이 하늘 어딘가에 펼쳐지기를 기다려도 본다.

순간 귀에 익은 새소리와 푸드득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린다. 아마 인기척에 놀라 촐랑맞게 날아가는 멥새다운 모습이구나 실소를 머금는다.  눈앞의 산은 산이라기보다는 야트막한 동산이기에 겨울이지만 가벼운 자연의 변화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무실로 문을 향한다.

심하게 부스럭 소리가 들려 눈을 돌렸다. 사무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노란 고양이가 마치 매복을 하듯 마른 수풀에 웅크리고 있었고, 그 광경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멥새들이 콩콩거리며 먹이를 쪼는데 열중이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를 보자 멥새들은 숨 가쁘게 날갯짓을 하자 고양이는 잽싸게 공중으로 부양하더니 덥석 한 마리를 낚아채고는 웅크리고 앉는다. 바람에 작은 깃털은 날리고, 고양이는 세수를 하며 하품을 하더니 유유히 사라졌지만, 함께 노닐던 멥새들은 그 광경을 보았는지 아니면 본 척도 하지 않는 것인지 다시 실개천 가로 모여들고는 먹이나 찾고 있다.

검불 속에서 오수를 즐기던 고양이 모습은 한가로움이었는데, 그 한가로움 속에 커다란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을 때, 자연의 섭리란 날짐승을 들짐승이 잡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 멥새의 조잘거림과 웅크리고 앉아있을 들고양이를 생각한다. 당시 멥새 떼와 들고양이가 보여준 자연의 섭리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우리의 속담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제18대 총선도 투표일까지 이제 3일을 밖에 남지 않았다. 늘 자신을 '뛰는 놈 위에 있는 나는 놈'의 위치라 생각했던 마음을 지녔던 후보들이나 측근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무관심한 콩콩거리는 멥새는 아닌지. 집단끼리 모여 자화자찬의 메아리만 남고 있는지. 혹 웅크리고 앉아있는 고양이는 아닌지. 하지만 모든 고양이가 멥새를 잡지 못한다. 모든 멥새가 고양이에게 잡히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작은 스승이자 큰 배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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