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철수(편집위원)
대동강 언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나고, 산속의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는 경칩지절이다. 이맘때가 되면 상례(常禮)로 치러지는 졸업식과 입학식. 없이 살며 힘들었던 시절 애틋한 사연으로 울먹이고 헤어짐이 아쉬워 흐느꼈던 광경은 사라지고 무덤덤한 의례로 변했다. 하지만  졸업은 다음 단계를 향한 준비이고, 입학은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과정이므로 해당학교의 학생이 되었다고 널리 알리는 의식으로 입학생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학칙을 준수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2일과 3일 관내의 모든 학교에서 입학식을 마쳤다. 전통사회의 입학과정과 학습과정을 통해 입학의 의미를 살펴본다.
조선시대 교육의 산실 성균관 명륜당.
고려, 국립대학 국자감을 비롯해 6등급으로 나눠, 무과는 없었어... 

고려와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기관의 입학 자격과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고려에서는 지금의 대학격인 국자감(國子監)에서는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고관의 자제가 공부하던 국자학(國子學), 국가 중앙 학부인 태학(太學), 서민을 위한 사문학(四門學)과 실생활에 필요한 전문 과정을 이수시키는 율학(律學), 서학(書學), 산학(算學) 등 6등급의 학과를 두고 경사6학(京師六學)이라 불렀다.

입학 자격은 국자학은 문무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제와 서인이 입학할 수 있도록 신분에 따른 규정을 두었다. 잡학(雜學) 즉 율학, 서학, 산학의 전문학과는 지금의 전문대에 해당하며 주로 하층 관리와 서민에게도 자격이 주어졌다.  국립대학격인 국자감의 수학(修學)방법은 국자사업박사, 태학박사, 사문박사, 조교 등이 교수(敎授)하였고, 유학생(儒學生)의 성적에 따라 사문학은 태학으로, 태학은 국자학으로 편입시키는 제도도 있었다.

고려왕들은 국자감 교육을 중요시하였기에, 예종4년(1109)에는 교육과정을 구체화하여 전문 7강좌인 7재(七齋)를 설치했다. 주역을 공부하는 여택재(麗澤齋), 상서(尙書)의 대빙재(待聘齋), 모시(毛詩)의 경덕재(經德齋), 주례(周禮)의 구인재(求仁齋), 대례(戴禮)의 복응재(服膺齋), 춘추의 양정재(養正齋), 무학(武學)의 강예재(講藝齋) 등 전문 강좌로 꾸몄다. 고려조의 과거제도에 무과(武科)가 없었다. 강예재가 무과를 대신했으나 인종11년(1133)에 문신의 반대로 폐지되었다. 국자감은 성균감(成均監), 성균관(成均館)으로 바뀌고 훗날 성균관은 조선으로 이어진다. 

성균관 입학자격은  3등급으로 분류, 9과목 이수까지 3년반 걸려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로는 서울에 성균관과 사학(私學)이, 지방에는 향교, 민간교육기관으로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이 모든 교육기관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성균관의 최고 책임자는 정3품직의 대사성(大司成)이며, 아래에 좨주(祭酒), 악정(樂正), 직강(直講), 박사(博士), 학정(學正), 학록(學錄), 학유(學諭) 등의 관직을 두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국립종합대학인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15세 이상의 양반자제로 △초시를 통과한 생원시, 진사시의 합격자 200명 △소과(小科), 향시(鄕試), 한성시(漢城試)의 합격자 △하급관리 중 입학을 원하는 자와 일반서출 등 3등급으로 나뉜다.

입학 후 유생(儒生)들은 동재(東齋)와 서재(西齋)에 기숙하고, 양인과 서출 출신들은 남헌(南軒)에서 생활하였기에 그들은 '남반(南班)'이라고 부른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을 상재생(上齋生)이라 하였으며, 소정의 선발 시험인 사학(四學)의 초시합격자인 승보(升補)나 가족의 공적으로 입학자격을 얻은 음서(蔭敍)에 의해 입학한 유생들을 하재생(下齋生)이라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의 주요과목은 4서와 5경이다. 신입생은 대학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다음 과목으로 올라간다. 총 아홉 과목을 이수하는데 필요한 독서기간은 3년 반정도 걸린다. 유생들에게는 매월 말에 시험을 보았고, 그 결과를 국가에 보고하는 등 매우 엄격했다.

300일 이상 출석해야 시험 자격 주어지고 학생자치회도 운영

교육은 과거를 위한 준비단계로 엄격한 규율 속에 생활을 하며, 과거에 급제하여 등용하면 졸업을 하게 된다. 유생들의 일과는 아침저녁 식당에 비치한 출석부인 도기(到記) 서명을 해야 한다. 당시에도 특채가 있었는데, 이는 출석점수인 원점(圓點)을 기준으로 300일 이상 개근을 하면 관시(館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거나 종합성적이 우수한 유생은 식년시와 천거를 통해 남들보다 먼저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

성균관에도 지금의 총학생회와 비슷한 자치기구인 '재회(齋會)'가 있었다. 회장에 해당하는 장의, 색장, 조사, 당장 등의 기구로 구성하여 유생내부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였다. 임원선출방법은 장의, 상색장, 하색장은 동·서재에 각각 1명씩 두었고, 새로 과거에 합격한 자 중에서 문벌이 좋은 자를 하색장으로 기존의 합격자 중에서 상색장을 뽑았았다. 장의는 먼저 들어와 공부하는 유생 중 문벌이 뛰어난 사람으로 뽑았다. 회의는 장의의 주재로 하며 다수의결을 따랐고, 퇴학을 결정하는 출재(黜齋)도 담당하였다. 때로는 국정에도 관여하여 전원의 이름으로 유소(儒疏: 상소)를 올려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권당(捲堂)이라 하여 동맹휴학으로 성균관에서 나가거나 석고대좌도 서슴치 않았다.

고려의 국자감이나 조선의 성균관은 인재양성은 물론 성현의 뜻을 배우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정사를 돌보는 덕치를 배웠으며, 지배사상과 관료사회를 재편하는 기능까지 담당하였다.

본격적인 입학철이다. 부모의 손을 잡고 첫 교문을 들어서는 초등학교 병아리, 처음 교복을 입은 아이들, 맘껏 멋을 부린 교복을 입는 고교생, 성인으로 등용문을 들어서는 대학 새내기. 입학은 모든 것이 새롭고 적응하기에 어색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색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부모와 교사, 교수들은 입학을 맞이한 모든 아이들에게 21세기 주역으로 활발하고, 건전한 사고방식과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도록 독려하고 계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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