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내 인생의 3분의1 이상을 아파트란 주거 공간속에서 생활을 해 왔으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셈이다.

아파트 생활은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과 개성,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아파트가 생활하기에 편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파트는 우선 일반 주택과 달리 앞마당이나 바깥마당이 따로 없기 때문에 한겨울에 눈이 쌓이거나 낙엽이 지천으로 흩날리는 가을철이 되어도 낙엽을 쓸어낼 걱정이 없으니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최근에는 아파트마다 최신 첨예 경비시스템까지 갖추고 4철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로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어서 각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안락한 공간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이 바로 아파트인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생활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오랜 세월 아파트 생활에 의한 경험에 의하면 보다 안락하고 살기 좋은 아파트 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는 우선 이웃을 잘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절실한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이처럼 편리하고 살기 좋은 아파트에서의 생활로 인해 나를 만날 때마다 불만과 불평을 잔뜩 늘어놓곤 하는 한 사람을 자주 만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단독주택에서 살아오다가 약 5년 전부터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나와는 오래 전부터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그처럼 아파트에 대해 넌덜머리를 치고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위층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마루바닥에 장난감을 끌거나 던지는 일,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큰소리로 울어대면서 엄마한테 떼를 쓰는 소리……등등, 처음엔 으레 그러려니 하고 그런대로 참고 견딜 각오를 했으나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부터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어느 새 크게 자란 아기가 이제는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마구 뛰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계속 큰 목소리로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장난감을 끌고 던지는 소리도 더욱 우악스럽고 요란해져서 도무지 참고 견딜 수가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이건 말 그대로 운동장이 따로 없고 놀이터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밤 늦게까지 잠도 이루지 못하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겨우 단잠이 들었다 하면 여지없이 또 다시 무슨 물건인가를 내동댕이 치며 쿵쾅거리는 소리에 스스라쳐 놀라 단잠을 깬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란다.

이렇게 며칠 잠을 설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경은 신경대로 날카로워지고 피곤해져서 늘 두통까지 앓으면서 짜증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하도 견딜 수 없어서 처음엔 위층에 직접 올라가서 조금만 주의해 달라고 예의를 다해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보았단다. 그런데 위층 사람의 대답은 아이들 기르는 집이 다 그런 거 아니냐며 이웃간에 이 정도의 소음을 정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아예 조용한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가라고 하더란다.

이 얼마나 예의가 없고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란 말인가. 그 이후로도 여전히 아무 변함이 없게 되자 이번엔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쪽지를 써서 그 집 현관문에 붙여 본 것도 여러 차례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도 나아지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부란듯이 더욱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이번엔 경비실을 통해 위층이 소란스러워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잠이라도 잘 수 있게 조용히 달라는 부탁을 해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란다. 그랬더니 그런 연락을 받은 위층에서 이번엔 어떤 놈이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며 오히려 소리소리 지르면서 호통을 치더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이겠는가! 그는 결국 매일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리다 못해 그런 집에 들어가기가 마치 도살장을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리고 생지옥이 따로 없다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집이 어서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일본에서 밤마다 소란스럽게 쳐대는 피아노 소리 때문에 결국은 몰래 그 집에 숨어들어가서 파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의 목숨을 끊어버린 비극적인 실화를 문득 떠올리곤 한다고 하였다.

오죽 견딜 수 없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겠는가.

가정이란 그날그날의 쌓인 피곤을 달래기 위한 안락하고 편안한 가족들끼리의 휴식처이며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즐겁고 행복한 장소이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예의와 예절을 지키는 것은 학식의 높고 낮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놀게 해주는 것도 훌륭한 가정 교육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웃의 괴로움이나 고통은 조금도 아랑곳 없이 그저 자기 자신들만 즐거우면 그만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의도 체면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가정 교육이란 결코 좋은 교육방법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다운 이웃 사촌까지는 못 되더라도 오해려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낯을 찡그리게 해주는 일은 사라져야 하겠다. 그리고 나보다는 우선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부터 실천으로 옮겨 보다 밝고 명랑한 사회를 이룩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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