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구리시장 일대를 본다

우리나라 어느 고장 어느 마을을 가도 그 마을에 담긴 이야기가 있다. 남양주투데이에서는 6~70년대의 구리시 수택동(1,2동)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발굴하여 독자 여러분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본다. 이 사진들은 수택동 수누피마을(당시 수택1리) 이촌말, 구리시장(수택3리)의 정겨운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글쓴이가 소장하던 사진과 70년대 새마을지도자였던 이완석님이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꾸민다. 귀한사진을 보관하였다가 흔쾌히 자료를 내주신 수누피마을, 이촌마을 회관 관계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글쓴이 주)

 -사진제공:한철수-
-수택동의 유래는?

수택동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양주목 구지면에 속한다. 1912년 일제시대 조선통독부의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1914년 3월 1일부터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가 되었다. 당시 구지면(龜旨面, 혹은 九旨面)의 '구(九)'와 망우리면(忘憂里面)의 '리(里)'가 합쳐 "구리면(九里面)"이 되었고 1972년 구리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구리읍 수택리로, 1975년 5월1일에 구리읍수택출장소가 생겼고, 행정개편으로 1980년 남양주군 구리읍 수택리로 불렀다.   

 

 

옛)구리극장-검배로 나가는 길. 양화점, 라사, 문구사, 양품점이 모여있어 당시 이곳은 멋쟁이들과 맛쟁이들이 찾던 곳이다. 문구사 앞의 공간은 아이나 어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튀김집. 당시 구리극장에서는 정영숙, 최불암, 신구 주연의 간난이가 상영중이다.(1976년 작/박태원감독)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마침내 1986년 1월1일 구리읍이 구리시로 승격되면서 수택리 전 지역과 교문동 일부가 수택동이 된다. 당시 수택동은 수택동과 수평동으로 나뉘어졌다가 1996년 1월 8일부터 수택1동, 수택2동으로 각각 부른다.

-수택1동의 지명유래는?

수택1동은 구리시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인 구리시장과 북쪽에 남양주시로 가는 8차선의 도로가 있고, 동쪽으로 왕숙천이 흐르고, 수택2동은 남양시장 주변과 수택3동이 경계를 하는 마을로 수택1동 이촌말을 중심으로 꾸민다.

수택1동은 검배, 이촌말을 큰 마을과 옥밭굴, 뒷논골, 뒤뜰, 여우메기, 용이바위, 이랑고개, 안록산의 옛지명과 돌다리, 주택단지 등 새로운 지명이 있다.
이촌말에서 수누피로 넘나들던 옥밭굴. 지금 구리천주교회 부근이다. 70년식 건물과 슬레이트 건물이 공존한다.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검배는 지금의 수택1동사무소 주변 마을로 왕숙천변 안록산(지금 검배주공아파트 부근)아래 검고 커다란 바위로 "검은바위-검바위-검배"로 점차 바뀌어 검배라 불렀고 이 바위는 70년대 초까지 물놀이를 나온 아이들이 다이빙을 즐기던 바위였다. 검배라는 이름은 왜정 때부터 신대촌(새터말)이라 불렀는데, 신촌(새터)와 옛 마을을 합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검배의 옛 마을로는 안말과 너머말이 있었다.
과거 구리극장에서 검배(신대천)으로 다니던 길. 당시 노선버스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청수장, 오복정, 유일반점은 자장면 냄새로 아이들을 유혹 했던 곳이다.-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검배의 소지명인 안록산(또는 황락산)은 해주윤씨의 종산이 있던 산으로 지금의 검배주공아파트가 들어섰고, 뒷논골은 지금의 남양시장 자리를 말하며, 이랑고개는 검배에서 수누피로 넘나들던 고개다. 용이바위는 검배의 안말 동쪽에 있던 바위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가 성씨로는 해주 윤씨와 벽진이씨,경주 김씨가 많이 살았다.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살던 이촌말 

이촌말은 구리시장 부근과 일화제약 주변의 마을을 말한다. 전주 이씨가 처음들어와 살아 이촌말이라 부르고, 술막, 그렁둔지(기롱둘기), 옥박(밭)굴, 돌다리 등의 작은 지명이 있다. 이촌말에는 전주 이씨, 김해 김씨가 세가 성씨이다. 옥박(밭)굴은 이촌마을과 수누피 중간에 있던 지명이다.

진짜 이촌말길-1. 지금 동서약국 뒷길에서 일화제약 방향.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이촌말의 별명은 '진촌말'이다. 비가 내리면 땅이 질척질척해서 "마누라없인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사는 동네"라 부를 정도였다. 1970년대 새마을 공사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그 오명은 씻었다. 

돌다리는 원래 민벌(지금의 구리여고에서 자원회수시설 주변)에서 남양주시 가운동 조운으로 넘나들던 옛길로 왕숙천에 살곶이 모양으로 생긴 다리로 100m 정도였다 한다. 지금의 돌다리는 60년대 이후 생긴 지명으로 보는 것이 좋다. 주택단지는 1970년대 이후 구획정리로 생긴 마을로 대규모 단독주택단지가 형성된 곳이다.

진짜 이촌말길-2. 꽃길 길의 신축현장. 왼쪽 가와집이 수택3리 사무실.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진짜 이촌말길-3. 지금의 일화제약 앞. 구멍가게 위편이 구리중앙교회이다.-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진짜 이촌말길-4. 과거 통일교회 있었던 길로 당시 구리공판장으로 문을 열었으나 구리시장, 남양시장 등에 밀려 시장구실보다는 방하나 부엌하나 형식으로 임대하던 곳이다. 지금은 모텔과 야한 주점으로 변했다.(꽃길 뒤안쪽 길)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진짜 이촌말길-5. 이촌말에서 일화제약으로 가는 길목.-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일화제약에서 수누피로 가는 길. 담장쪽이 일화제약, 상점 쪽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당시 아이스케키, 고구마과자 등을 만들던 공장들로 즐비했었다. -사진제공:수누피 상록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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