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는 부채, 동지는 책력(달력)을 선물하는 날

▲ 한철수(편집위원)
"실뜨기를 해요/호롱불 사이로 비척이며 일어서는/긴 겨울 공복감에/어머니 밤참 들고 오실 때까지/거지바지 겹바지/삼촌바지 명주바지/누나바지 쫄쫄이바지/할머니 바지 몸빼바지/내바지 누나바지."-한철수의 '실뜨기' 일부.

6-70년대 한겨울밤의 풍경이다. 오누이가 무릎을 맞대고 긴 겨울밤을 보낼 때 흔히 하던 실뜨기 놀이를 노래한 것이다. 겨울밤 중 가장 긴 밤이 바로 동지(冬至)다. 반대로 낮이 가장 긴 날은 하지(夏至)이기도 하다. 우리조상들은 동지와 하지를 기준으로 낮과 밤의 길이를 가름하였다.

팥죽은 천연두를 옮기는 역질을 쫒는 풍습

동지가 지나면 차츰 밤을 점유하는 시간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이날을 태양이 다시 태어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작은설'이라 여겼다. 궁중에서는 이 날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100여명의 가무단이 연희하는 '회례연(會禮宴)'을 열기도 했고, 민가에서는 팥으로 죽을 쑤고 찹쌀로 동그랗게 빚은 새알심을 넣어 먹는 시절음식이 지금까지 전한다.

팥죽을 먹는 관습은 중국 진나라로 올라간다. 중국문헌 "형초세시기"에 보면 진나라에 공공(共工)이라는 사람에게는 골칫덩어리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는데, 동짓날 그 아들이 죽어 천연두를 전하는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다. 천연두는 예방 주사를 맞으면 걸리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역질이 마을에 들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꼼짝없이 앓다가 죽는 일이 잦아지자 공공은 자신의 아들인들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공공은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는 팥죽을 써서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리자 역질 귀신이 달아나자 마을은 평화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동지가 되면 역질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는 풍습으로 남은 것이다.

단오는 부채, 동지는 책력(달력)을 선물하는 날

팥은 곡식들 중 유난히 붉은색을 지닌 것이라 귀신이 붉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색이 있을 때 달아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며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구분하여 불렀고, 애동지는 '아이동지'라해서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팥죽을 쑤어 먹지 않았다.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도 잘 지켜져 오고 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시식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새 책력을 반포하니 내년 절후가 어떠한고/해가 짧아 덧이 없고 밤이 길어 지루하다." 농가원령가 11월조의 노래에서 보이듯 동지에는 팥죽 외에도 책력 즉 지금의 달력을 서로 나누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단오의 선물은 부채요. 동지의 선물은 책력이라"는 전하는 것이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동지의 풍습이 있었다. 우리와는 반대인 북반부에는 이날 낮이 가장 길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고,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 미드라교도들은 12월 25일을 '태양탄신일'로 삼아 축제를 열었다. 미드라교의 동지제는 로마로 전해져 크게 유행하였으나 4세기경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축제로 대신한다.

22일은 중동지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 팥죽도 쑤어먹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달력을 선물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미풍양속은 지키면 지킬수록 그 아름다음은 더 크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