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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3백도의 불을 다루는 여인....도예가 권다온
유년의 아득함이 배어나오는 흙과 불이 빗은 분청
2007년 11월 26일 (월) 13:40:33 한철수 편집위원 guji2311@hanmail.net

   
 
  28일까지 남양주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권다온 도예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육체와 정신이 하나

분청을 만을 고집하는...김용윤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설(小雪)도 지난...11월 24일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권다운 도예가를 만났다. 몇 차례 그룹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관찰했던 터라 설렘은 적었다.

오후 3시경, 반갑게 맞이하는 권 작가에서 상상이 깨졌다. 너무나 가냘픈 체격... 저 몸에서 흙을 다루고, 장작을 패고, 불을 다루다니 약간은 의외였다.

그녀와 1시간여 만남. 더욱이 편안하게 했던 것은 수줍은 듯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주어 인터뷰는 무척이나 쉬었다. 그녀의 삶과 작품세계에 들어가 본다. (글쓴이 주)

*유년의 기억이 가장 아름다운 보석

-반갑습니다. 우선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 몇 번째 전시회인지?

"네, 어느새 다섯 번째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녀는 다기와 다기완을 즐겨 만든다. 이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평정심을 준다고 한다.  
 

-듣기로는 남양주시가 본향이라고 하던데, 태어 난 곳과 어린 시절 권 작가의 모습은?

"남양주시 호평동 호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린시절은 크게 자랑할 게 없습니다. 그저 부끄러움 많은 새침데기였으니까요. 하지만 내면의 장난기는 남들보다 컸습니다. 등하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지고, 밟고 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장위동으로 전학을 가기 까지는요.

-소위 유학파시군요. 그때는 이곳뿐만 아니라 소위 트인 부모들은 그렇게 많이 했으니까요. 서울로 가기 전 어린 시절을 회상했는데, 지금 기억에 가장 남는 장면은?

"마치 필름이 돌아가듯 많은 것들이 회상되는데...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입니다. 그 들판에 갈무리를 나타내는 낟가리 볏짚에 놀던 모습입니다. 보통 반나절은 넘게 동무들과 놀았지요. 발밑에서 느끼는 흙의 감촉입니다."

   
 
  너른 남양주 아트센터를 가득히 들어선 작품들. 권 작가는 이만한 크기의 전시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고 수줍게 말한다.    

-대부분 서울 유학생들에게는 적응기까지 갈등가운데 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권 작가는 어떠했는지?

"글쎄요. 저 역시도 부적응자였죠. 친구들에게 고향이야기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환경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소위 강원도 촌년이라는 개념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활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청소년시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유년의 기억은 제 작품 생활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입니다.

*상업미술에서 자신을 찾는 작업과의 큰 갈등과 기로

   
 
  5칸짜리 오름가마. 그녀는 매년 4월과 11월 불을 지핀다.  
 

-유년 시절이 아름다운 보석이라 참 멋진 표현이십니다. 이야기를 좀 뛰어 넘겠습니다. 도예작가의 길을 들어선 계기는?

"고등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여고졸업과 동시에 무역회사 디자인실에서 3년간 근무를 했었습니다. 디자이너 대 여섯 명이 낮과 밤 구분 없이 섬유디자인에 푹 빠졌지만, 어느 순간 상업미술에 대한,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무언가 제 자신을 위해 새로이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하였습니다."

-섬유를 디자인했으면 그와 유사한 일을 선택했을 텐데... 분청사기에 입신을 하게 된 동기는?

"장마철 맨 바닥과 질퍽대던 논바닥입니다. 어린 시절 밟고 뛰놀던 흙이 가슴을 저릴 정도로 남아있었기에 흙으로 하는 작업을 하자고 내심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울산업대 도예과를 입학했습니다."

   
 

   
 

-남들은 졸업을 앞둔 시점에 입학을 했는데, 늦깎이 대학생활은 어떠했는지?

"모든 게 즐거웠습니다. 1년은 열심히 놀고, 다음 1년은 학생운동을 하다 보니 주니어가 끝나더라고요. 3학년이 되자 '이제 뒤 돌아보지 말자. 그래 앞으로 가는 거야.'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물레강의를 하셨던 김용윤 선생님의 덕소 작업실에서 MT를 했었는데, 그곳에서 장작가마를 처음 대했습니다. 제게는 김 교수님의 작업이 엄청난 충격이었고, 전율에 뭉클하더군요. 한마디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권영식, 김용윤 선생은 마음의 거울이자 가장 닮고 싶은 스승

   
 
  그녀가 진정 닮고 싶은 것은 무얼까.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를 닮고 싶어 합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런데... 권 작가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스승은 김용윤 선생이신군요. 그 외 또 영향을 준분은?

"대학부터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주신 분은 권영식 교수님이십니다. 개인전이나 그룹전에 제 이름이 들어가면 시간을 내어 꼭 찾으셔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권 교수님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김 선생님은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스승이십니다."

-이야기를 다시 김용윤 선생과의 인연으로 돌리겠습니다. 김 선생님도 대단한 고집쟁이인데 제자로 받아들이기까지 에피소드는?

"대학에서의 한계는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제게도 그 한계점을 발견했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선 저분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삼고초려 이상을 했습니다. 그때 마다 거절을 당했지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저의 그러한 행동을 귓등에도 듣질 않았다고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선생님의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10년간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저 불꽃처럼 자신을 단련시킨 이는 권영식, 김용윤 스승이라 한다.  

-김 선생님과 10년간의 배움은?

"옛말에 시집살이를 할 때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 3년씩이라고 했듯이 사람이 무언가를 이루려면 최소한 그 기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기간 동안 작업보다는 작가로서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 인가하는 사는 방법과 삶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기간은 정말 하룻밤의 꿈만 같습니다."

-약력을 보니 일본에서 수학을 했던데...?

"네. 일본 하기라는 곳에서 98~9년 2년간 수학을 했는데요. 그곳은 심산유곡입니다. 물레질, 유약조합 등 도자기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악착같이 배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았지만 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시야를 넓히기 위함도 있었지만 사실은 IMF의 곤궁기를 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홀로서기는 언제, 분청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독립은 2002년에 했습니다. 올해로 다섯 해가 되지요. 그 후 김용윤 선생님의 장작가마가 저를 예까지 인도했듯이, 저 역시도 청평의 수리재에 터를 잡고 오름가마를 만들면서입니다. 분청은 우리 도자기 중에서 가장 빼어납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에도 어려우면서 편하기 때문입니다."

-세간에는 아직 김용윤 선생의 아류 작품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제자들은 존경하는 스승의 걸음걸이도 닮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10여년을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 작품경향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이제 그 부담을 털고, 본격적으로 저만의 작품세계를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색을 내는 작품들은 소금가마에서 구워 내

-작품을 살펴보니 색이 진하고 독특한 윤기를 풍기고 있던데 특별한 기법이 있는지?

"소금가마죠. 제가 5칸의 가마를 갖고 있는데 제일 마지막 칸에서 구운 녀석들입니다. 전기나 가스가마에서는 저런 색을 낼 수 없죠. 바로 장작가마의 장점입니다."

   
 

-청출어람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단기적인 계획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10년 뒤의 모습을 그린다면?

"우선 제 자신을 찾는 일을 통해 그동안 긴가민가했던 예술세계를 찾을 겁니다. '기술, 기능, 사상' 이 삼위일체의 균형을 잡는데 우선 하고, 권다온의 작품세계를 완성시키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더 바쁘게 생체리듬을 만들 겁니다. 과거는 미래다.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묵묵히 뒤를 지켜주신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권다온 도예가의 주요경력---

-남양주시 호평동 호만마을 출생
-서울산업대 도예과(94), 동 대학원 곡예학과 졸업(97)
-일본 하기시 연수(98~99)
[개인전]
-불암갤러리(97. 서울)
-하기시시청갤러리(98. 일본)
-아름다운차박물관초대전(05. 서울)
-장은선갤러리조대전(06. 서울)
-권다온개인전(07. 남양주아트센터)
[그룹전]
-질꼴전(94~현)
-Clay Massage21 출품(98~현)
-남양주미협전 출품(2001~현)
-목포세계도예 Pre Expo2000 초대전(00)
외 다수
-다온(daon)공방운영
-(사)한국미술협회회원
-질꼴, Clay Massage21 회원
-서울산업대 도자문화디자인과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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