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은 어머니의 눈, 폭설은 아버지의 눈, 함박눈은 아이의 눈'

풋 사과 씹는 소리로 첫 사랑을 만나 가시버시가 된지 스물 두해를 한 결로 지켜온 아내가 성을 내듯 천둥과 번개가 2007년 11월 19일과 20일에 걸렸다.

첫 서리를 맞은 낙엽들... 그들에게서 맘상한 아내의 가슴이 만났었다.
"초겨울에 웬 천둥……." 시쳇말로 쌩뚱맞다 싶고 호기심에 창을 여니 방충망 사이로 흰 눈발이 보인다. 가로등은 자연히 조명이 되어 그들을 비추고 눈발은 걸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듯 유선방송 전선에도 전깃줄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시간이 꽤 되었는데 집 앞 운동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간혹 그 아이들의 어버이 웃음소리가 눈갈기와 눈발을 뚫고 귓가에 맴돈다.

19일 자정 경. 천둥소리에 놀라 창을 열자 첫 눈이 내리고 있다.
서리에 묻힌 물상을 관찰한지 며칠 됐으니 밤눈이 올때가 되었나 보다 자위하고 늘 그랬듯이  깊은 잠에 빠진 열세 살 셋째 딸을 깨 강제로 첫 눈을 보게 할까 망설이다 내 의지를 꺾는다. 그리곤 새끈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백옥같이 하얀 얼굴을 본다. 황소바람에 뒤척이는 모습에 문을 닫고 옥상에 오른다.

예전 같으면 아이의 손톱에 새겼던 봉숭아물을 찾았었을 건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예전의 봉숭아물을 올해는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낮술에 남의 담장 아래나 텃밭에 자라던 봉숭아꽃과 잎을 솎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아내는 아이들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그리고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동여매던 모습이 갑자기 아련해 진다. 눈이 오는데 첫눈이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봉숭아물이 생각나는 건 아마 나의 이기심인지 모른다.

옥상에 첫 발국을 남기며 맴맴 돌며 상념에 빠졌다가 잠자리에 든다. 출근길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평소보다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인 탓도 있었겠지만 실은 지난 주말 글벗들과 와인기차여행을 다녀온 피로가 아직 머물렀기 때문이다.

일상처럼 큰 아이를 등교시키고 태릉길로 들어선다. 오늘은 지난주에 바라보던 가로수의 모습이 아니다. 플라타너스의 너른 잎들이 바닥을 구르다 자동차 바퀴에 깔리기도 하고 찻바람에 회오리를 내며 사라지기도 한다. 커다란 줄기를 가리던 이파리 우산은 듬성듬성 하늘을 보인다. 어느새 저들도 추락을 기다리는 구나.

올 단풍은 유독 진했다. 여느 해를 바라보던 낙엽보다 진했다. 꽃과 이파리들은 자신의 환경이 열악해 지면 번식을 위해 꽃과 꽃임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낙엽 역시 자신이 추락을 하므로 줄기와 뿌리를 보호한다는 이치에 감탄을 했지만 지난주까지 제 멋을 뽐내던 저들이 저렇게 추락을 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부활이구나라는 생각이 앞선다.

첫 눈에 싸인 천마산...마치 내 가슴을 찍은 엑스레이 필름같다. 
평소보다 1시간여 늦게 사무실의자에 앉는다. 잠시 창밖을 본다. 어느새 수북이 싸였던 눈가지들은 눈물[雪水]가 되어 똑똑 떨어지고 있다. 멀리 천마산을 바라본다. 골짜기가 마치 내 가슴을 찍은 엑스레이필름으로 다가온다. 이즈막의 바람은 사물을 빗기며 속내를 우리에게 보이려 애를 쓰지만 눈은 잠시라도 그 속내를 숨기려 한다는 작은 상념에 빠진다. 포도(鋪道)위를 가로질러 서있던 단풍나무 이파리가 수북한 보도위에 새발자국을 남긴다.
새 발자국으로 남은 단풍잎. 눈석임 속에 마르고, 얼고...펴지고, 말리고...오늘 첫눈은 우리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첫눈이 온다는 것은 가을이 사라지고 겨울이 온다는 계절의 몸부림이다. 눈은 사물을 가리기도 하지만 눈석임위로  더욱 선명하게 사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첫눈은 어머니의 눈이고, 폭설은 아버지의 눈이며, 함박눈은 아이의 눈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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