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연봉 4천만 원을 받는 월급쟁이가 44년간 열심히 저축해야 강남에 위치한 33평형 아파트를 겨우 살 수 있다고 발표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서민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안은 채,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의 꿈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현실에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광속에서 인심이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그만큼 살림살이가 넉넉해야 인심도 넉넉하고 따라서 남한테 따뜻한 인정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날로 어려워지면서 우리들의 인심 또한 자신도 모르게 날로 각박해지고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주 먼 옛날, 노극청이란 서울 사람이 갑자기 지방으로 내려갈 일이 생겨 급히 집을 내놓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가 나간 사이에 이웃 마을에 사는 현덕수란 사람이 찾아와서 집을 사겠다고 하여 노극청의 아내는 은 열 두 근을 받고 집을 팔게 되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노극청은 아내로부터 집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집 값으로 받은 은 세 근을 들고 그 길로 곧 현덕수를 찾아갔다.

“내가 집을 살 때는 아홉 근밖에 주지 않았소. 그런데, 몇 년 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수리한 것도 없이 살고 나서 세 근이나 더 받는다는 것은 경우가 아니므로 이를 돌려주러 왔소이다.”

노극청이 이렇게 말하며 은 세 근을 내놓자, 현덕수는 펄쩍 뛰면서 손을 내저었다.

“어찌 당신의 경우만 찾고 내 경우는 몰라주십니까? 그동안 집값이 올라 요즘 시세로는 합당한 금액이니 아예 돌려줄 생각일랑 마시고 그냥 돌아가시오.”

“난 지금까지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오. 그런데 어찌 내 집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부당한 이익을 보란 말이오. 만일 이 세 근의 은을 받지 않는다면 당장 은 열 두 근을 모두 돌려 줄 테니, 다시는 내 집을 살 생각을 마시오.”

노극청은 화까지 벌컥 내면서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 바람에 현덕수는 마지못해 은 세 근을 받았다. 그리고는 몹시 못마땅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흥, 내가 어찌 당신보다 못한 사람이 되란 말이오. 어림도 없는 말씀.....”
노극청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현덕수는 은 세 근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동문선’에 실려 있는 극히 짧은 내용 중의 한 토막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날로 각박해지고 메말라 가는 요즈음 우리들의 정서와 인심, 비록 서로가 넉넉지 못한 살림이긴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좀 더 넉넉함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고 곧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옛 이야기에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대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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