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부터 제3회 남양주관광우수상품전 열어

멋모르고 배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이 더 힘들어
전국 공모전과 공예촌 건립은 회원들의 큰 꿈

장맛비가 잠시 멈춘 후텁한 18일 오후 남양주시 금곡동 어룡마을 김길수회장의 작업장을 찾았다. 작품에 화장을 시키듯 사포질로 땀이 송글송글한 김회장을 만났다. 냉커피를 손수 타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겸손함을 느낀다.

김길수 회장
나전칠기란 나전과 칠기를 말한다. 나전(螺鈿)은 고유어로 ‘자개’라 하며, 여러 무늬의 조개껍질 조각을 물체에 붙이는 것으로 나전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 낸 공예품을 나전칠기라 한다. 이러한 기술이나 만드는 사람을 나전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술은 중국 당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칠기는 신라의 고분에서 다량 출토되고 있으며 백제·삼한시대의 칠기도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르러 일반적인 생활용기로 널리 사용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전칠기의 제작과정을 보면, 먼저 나무로 화장대, 교자상 등의 기본틀인 백골을 짠다. 이어 백골의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고르게 한 다음 백골의 틈을 메우기 위해 칠죽을 발라 자개를 백골에 붙인다.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과정을 거친다.

-김회장님의 성장배경과 입문 시기는.

김회장이 재현 한 19세기 장신구함.

"49년 전 전북김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유소년과 청년시절을 보내고, 74년 친척의 소개로 상경하여 상봉동 나전칠기 공방의 문을 두드린 지 어느새 33년이 됩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 일한 것은 자개장이었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자개로 작품을 만드는 곳이 많았는데…. 크고 작은 작업장이 아마 천개는 넘었을 겁니다. 지금은 아마 자개장을 만드는 곳이 지금은 열 손가락을 꼽아도 남을 정도로 그 숫자는 줄어들었지요."

-그 많던 자개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줄어든 원인은.

"줄어든 원인은 과거 주택문화에서 아파트문화로 주거환경이 바뀌면서,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면서 어른들의 안방의 상징이었던 자개장과 문갑은 물론 장식품까지도 개성에 맞는 것으로 바꾸다 보니 자개로

장신구함의 옆 문양
만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 아닌가합니다. 그 후 자개장을 다루던 장인들은 소품으로 전환합니다."

-남양주와의 인연은.

"상봉동에서의 생활을 접고, 1979년에 구리시 동구동 동창마을에 작은 공방에서 스승에게 배운 자개장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사향 길에 접어든 상품시장은 회생할 줄 몰랐지요. 장인들의 한 가지 특징이 고집 아닙니까. 지금까지 자개에 풀칠을 하고 옻칠을 매김으로 제 자신을 단련시켰고, 그 단련은 지금까지 이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남양주와의 인연은 1979년 지금의 구리시 동창마을에서 1986년 딸기원으로 옮겼지요. 그리고 1993년 이곳 어룡마을로 왔습니다. 어찌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는 일 저 뿐이겠습니까."


-자개와 옻칠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작품 하나하나가 다 저의 새끼들이지요. 하지만 우리 나전과 옻칠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받을 만

보석함

한 일이 있었습니다. 1990년 일본 가도현에 한 호텔공사에 참여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나전과 옻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사규모에서 놀란 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를 대부분을 옻칠을 한다는데 그 놀라움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벽과 천정은 물론 승강기, 화장실까지 옻칠을 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일부에게만 전수 되었던 쇠붙이에 옻칠하는 방법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나전과 옻칠은 우리나라 장인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그들의 사업적 안목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작업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지니고 1년 뒤 귀국 했습니다.

-남양주공예인협회 창립까지 과정은.

삼족오 명함집
"일본에 다녀온 후 처음 배우는 자세로 자신의 일을 하겠노라 다시 결심을 했습니다. 멋모르고 배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이 더 힘이 듭니다. 그 힘을 나누고자 뜻을 함께 하는 분들과 1999년 창립을 선언했고, 다음해 5월에 발대식을 통해 마침내 남양주공예인협회를 창립했습니다."


-창립 후 활동은.

"창립 후 회원들간 정보도 나누고 서로를 위로도 합니다. 회원들의 작

열쇠고리
품의 우수성을 보여 주기 위해 중앙과 경기도는 물론 지방에서 펼쳐지는 기능대회, 관광상품공모전, 공예대전에서 참여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남양주우수관광상품공모전, 회원전, 불우이웃돕기전 등을 개최합니다. 창립과 동시에 2000년부터 협회 회원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고, 남양주에 거주하는 솜씨 좋은 사람들을 발굴하는 차원에서 남양주관광상품공모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협회의 창립은 회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인재발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회원전에 거는 기대는.

"작년까지 다섯 차례 남양주우수관광상품공모전을 했으나 집안잔치가 아니냐는 오해를 풀기위해 올해부터는 등위를 가리는 공모전 보다는 회원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인천, 구리를 포함한 경기도 일원의 회장단들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회원작품과 찬조작품을 포함하면 2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전국 규모의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회는 전국우수관광상품공모전의 전초전입니다. 아직까지 한수이북에서는 전국단위의 공모전을 개최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전국규모의 공모전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시 관계자와 타협점을 찾고 있습니다."

-그 꿈 꼭 일궈내시기를 기원하며, 불우이웃돕기를 한다고 하던데.

"해마다 회원들의 작품을 찬조 받아 판 대금을 장애인들과 소년소녀가장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흔쾌

학과 구름 문양의 보석함.

히 작품을 내 주는 회원들에게 감사하고, 그 작품을 소장하시는 분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작년의 경우 5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려 어려움 분들에게 돌려드렸습니다."

-개인이나 협회에 포부가 있다면.

"글쎄요. 모든 공예인들과 장인들의 꿈은 하나입니다. 명장이나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 반열에 오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경기으뜸이가 되는 일이 우선이겠지요. 어느 협회나 마찬가지지만 저희도 공예촌을 갖는 일입니다. 지금 부지 서너 곳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는 25일부터 한주 동안 남양주아트센터에서 저희들이 마련한 제3회 남양주공예인협회 회원전이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나전은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한다.


-김길수회장의 주요경력과 수상실적

2002. 4. 2002년 서울공예대전 입선
2002. 4. 2002 FIFA월드컵기념 우수공예품특별초대전 초대작가
2002.12 제3회 나비상품디자인공모전 특선(함평)
2003. 3. 제2회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장려상(세계일보)
2003. 5. 제2회 남양주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 대상
2004. 1. 제1회 부천한국문양공예대전 특선
2004. 2. 한국공예 유럽진출을 위한 개발위원 위촉(사. 한국공예예술협회)
2004. 4. 제7회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입선(한국광광공사)
2004. 5. 제3회 남양주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 은상
2004. 5. 제5회 경기도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 동상
2004. 6. 세계평화공예예술대전(IAEWP EGO-UN) 특선(오스트리아)
2004. 6. IAEWP EGO-UN 이사장 감사장
2004. 7. 제34회 경기공예품대전 특선
2004.10. 제3회 한국옻칠공예대전 특선(원주)
2005. 3. 한국공예연구가협회 공로상
2005. 4. 2005년 경기도기능대회 동상
2005.12. 제10회 온고을전통공예전국공모전 입선(전주)
2006. 4. 2006년 경기도기능대회 금상
2007. 4. 2007년 경기도기능대회 은상
2007. 6. 제37회 경기공예품대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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