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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의 풍수여행-51 '지나치게 모양이 변한 이신록의 묘'
2015년 01월 13일 (화) 13:09:33 안종선(교수) sungbosungbo@naver.com

   
▲ 안종선(교수)

양평에서 양평대교를 건너면 강상면이다 이 면소재지 앞에서 곤지암으로 향하는 도로가 98번도로이다. 이 도로를 타고 한국방송광고공사종합수련원을 지나 달리면 세월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이처 방향과 곤지암 방향으로 길이 갈리는데 직진하면 산북면이 나온다. 산북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이 상품리인데 이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서희 장군의 묘가 있다.

양평방향에서 곤지암으로 달리다가 365번 도로 표시가 나오면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서 불과100미터를 가지 못해 우회전한다.

이 도로는 365번 도로를 탈피한 도로인데 이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좌측으로는 송현리와 주록리를 거쳐 여주 금사면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광주 이천으로 가는 98번 도로이다. 이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는 길을 택해 불과 200여미터를 가면 곰실이다. 이 도로 우측으로 보면 큰 길에서 300미터 들어간 골짜기에 제각이 하나 있고 우뚝 솟아오른 묘역이 보인다.

마을길을 따라 제각 앞에 차를 세우고 제각 뒤로 올라간다. 마치 계단식으로 전순이 깎인 묘역이 보이는데 묘역으로 올라가 보니 지나치게 높이 쌓여진 느낌이다. 인작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뒤를 반원형으로 막아선 주산이 금형에 가깝고 장막 같다.

주산에서 짧은 지각이 내려와 당판을 이루었고 좌우로 청룡과 백호로 호종하고 있다. 당판을 살피면 지나치게 인작을 가했지만 결구되듯 혈심이 잡히는데 문제는 지나치게 모양을 변형시켰다는 사실이다.

   
묘비에는 이 묘의 주인이 누구인지 새겨져 있다. 유명조선국통훈대부사헌부감찰완산이공휘신록지묘배숙인전의이씨묘(有明朝鮮國通訓大夫司憲府監察完山李公諱申祿之墓配淑人全義李氏墓)라는 글씨는 이 묘의 주인이 완산이씨 이신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나 이신록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546본,《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451본,《전고대방(典故大方)》에 109본,《국조방목(國朝榜目)》에 103본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중 시조가 뚜렷하게 밝혀져 전하고 있는 본관은 100여 본으로 추정된다.

이씨는 신라의 육촌(六村)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급양부)의 촌장 알평(謁平:표암공)을 시조로 하는 경주(慶州)이씨, 한(翰)을 시조로 하는 전주(全州)이씨, 중국 한문제(漢文帝) 때 사람인 반(槃)의 24대손 황을 시조로 하는 고성(固城) 이씨, 원나라 출신으로 조선시대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진 이지란(李之蘭:본명은 퉁두란)을 시조로 하는 청해(靑海) 이씨 등으로 구별된다.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이며 아울러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입수에 올라 격정하여 보니 유정한 혈판이나 지나친 인작으로 그 모습이 변했다. 그러나 혈심은 완연하고 그 흔적은 남아있다. 입수에서 보면 우선익 방향으로 지각이 벋어나고 혈판은 계곡의 정면으로 향했다. 혈판은 유혈의 변형인 잉혈이다.

단지 좌향은 현재의 좌향에서 약간 틀어야 하고 기맥이 뭉치고 여기가 흐른 방향은 전순이 깎여 잘 보이지 않으나 바위가 하나 박힌 방향이다. 아울러 바위는 애초의 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손을 타소 높이 쌓으려는 흔적이 전순을 깎아 혈의 모양을 훼손하였으니 아깝고 후손의 무지가 한심스럽다. 좌우의 청룡과 지각이 완연하나 교쇄(交鎖)를 이루지 못하고 한문(閑門)이 열렸다. 백호 자락이 뻗어나가다 묘역 앞에서 배반한 듯 보이나, 한문 부근에서 작은 지각이 나와 앞으로 뻗었으니 백호배반(白虎背反)은 아니다. 만약 작은 지각이 전순 방향으로 뻗어 나오지 않았으면 영락없는 백호배반이다.

한문 부근에 가로로 지은 재각이 보인다. 한문이 열려 멀리 마을이 보이고 바람이 불어치면 계곡풍이 될 염려가 있으니 재각으로 비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혈심이 있으니 계곡풍은 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나치게 손을 대어 모양이 변하고 묘역이 피해를 보고 있다. 묘역을 둘러보고 내려오며 새삼 아쉬운 것은 후인의 무지와 후손의 무지함이 조상의 묘를 헤친 모양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안종선교수 블로그 http://blog.naver.com/sungbos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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