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형석(남양주소방서 소방위)
구급출동 지령이 나왔다. “ㅇㅇ아파트 할머니 노환 거동불편” “…” “병원 갈 준비해서 직접 1층 현관 앞으로 내려온다고 함”. 사무실은 잠시 적막이 흐르다가 일상으로 돌아간다. 상황요원이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멘트를 날렸을 땐 응급상황에 준하는 환자가 아니라는 알듯말듯 한 늬앙스가 감지된다. 경험으로 짐작건대, 몇 가지의 생필품과 이불 보따리가 함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출동지령이 나오면 소방관은 언제나 가장 나쁜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화재현장 에서는 불길 속에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을 가정하고, 환자가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하면 뇌손상을 먼저 의심하고, 핸드폰 위치수색이 접수되면 도심 속에서도 조난상황에 준해 수색활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정작 철수명령이 떨어질 때 보면 늘 안도감 보다는 허탈함이 앞질러 업무피로를 가중한다.

십여년 전 소방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했다. 또한, 응급구조사로 직무에 임할 때는 “나는 이타적으로 근무하고 모든 인류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해 계속해 봉사할 것입니다.”라고 선서했다.

선서(宣誓)는 맹세다.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다. 중세시대 피의 맹세, 춘추전국시대 도원의 결의, 신라시대 임신서기석 화랑의 맹세, 현대에는 대통령 취임선서, 증인선서, 혹은 음주운전 근절서약을 통해 여럿 앞에서 성실할 것을 맹세하며 저마다의 사명과 직무에 임한다.

선서는 법적인 근거가 필요한 것도, 성립요건이 갖춰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 앞에 맹세하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구속력은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한층 엄격하게 신념화 되는 것이다.

소방공무원으로서 국민의 안전지킴이로서 출동한 모든 현장에서 한 생명을 구하고 희생봉사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값진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성과없는 출동이 되더라도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자긍심과 보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소방공무원 복무규정에는 상위법에 없는 복무자세가 명시되어 있다. 상부상조의 동료애와 공적·사적 생활에서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덧붙인 행동강령은 자괴감이 몰려와 어디라도 숨어버리고 싶다. “비방하거나 다투지 마라, 건전하지 않은 오락행위를 하지마라, 품위 유지하고 청렴하게 생활해라”가 그 예일 것이다.

소방공무원 복무규정을 통해 구시대 소방조직을 방증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 시대 국민적 열망과 119의 직무현장을 투영하여 ‘국민 앞에 절대복종’, ‘안전지킴이 신뢰 구현’ 하는 다짐으로 본문조항이 개정되어 ‘소방 곧, 무한봉사’라는 직무규정이 모든 소방공무원의 신념으로 천명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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