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주관(主觀)’이란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철학적인 의미의 주관이란 ‘인식하는 주체의 의식, 또는 그의 순수한 정신세계’라고 풀이하고 있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늘 자신의 믿음이 확고하고 강하여 그 어떤 사건이나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주변의 권유나 강요에 흔들리다가 자칫 큰 우를 범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자신만의 뚜렷한 판단과 소신으로 흔들림이나 실수가 없이 당면한 문제를 잘 처리해 나가는 경우를 우리들은 가끔 목격하곤 한다.

이와는 반대로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주변 환경에 따라 쉽게 흔들리기 쉽게 마련이다. 그 한 예로는 우선 유행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겠다.

프랑스의 파리’라고 하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선 유행의 도시라는 생각이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이 세상 모든 유행의 시발점인 곳이요, 최신 유행의 일번지로 꼽히고 있다.

여성들의 패션은 물론이요, 멋진 핸드백과 구두, 헤어스타일, 그리고 목걸이와 귀고리 등의 장신구와 악세서리를 비롯하여 각종 화장품과 향수 등이 그렇지 않아도 미를 추구하기에 바쁜 여성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행에 민감하고 그것을 따르며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의 본능이다. 그러기에 여성들이 멋지게 보이고 좀 더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남보다 한 발 앞서 유행을 따르는 일 역시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요,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새롭고 좋은 유행이라 해도 누구나 그 유행을 잘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여유도 따라야 하겠지만 남달리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뛰어난 미적 감각과 유행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유행에 민감해야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아주 오래 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유행에 민감하여 오늘 파리에서 그 어떤 유행이 생기면 내일 아침이면 서울의 명동거리에서 이미 그 유행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의 속도가 몹시 빠르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유행을 잘 따른다고 해서 무조건 모두 바람직한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유형의 유행이라 해도 누구나 모두 무작정 그 유행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 전, 한 때는 맘보 바지, 그리고 나팔바지와 통바지가 크게 유행을 할 때는 그런 바지를 입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너도 나도 모두가 그런 바지를 열심히 입고 다닌 적이 있었다.

스노우진이 유행을 할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얼룩덜룩하게 빛이 바랜 옷을 즐겨 입었다. 여기저기 옷이 다 해져서 구멍이 숭숭 뚫린 청바지가 한동안 유행을 하기도 하였고, 그래서 심지어는 새 청바지를 사서 구멍을 뚫기 위해 바짓가랑이에 돌을 넣고 시멘트 바닥에 적당히 갈아서 입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배꼽티가 유행할 때는 젊은 여성이건 나이가 든 여성을 막론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모두가 배꼽을 드러내 놓고 다녔으며 그 밖에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유행들이 우리 곁을 스쳐갔다.

옛날 중국의 어느 공주는 늘 얼굴 표정을 찡그리고 살았다고 한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그렇게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천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볼 때는 그 공주의 찡그린 모습이 몹시 귀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대부분의 중국 여성들이 너도나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공주의 찡그린 모습을 흉내내보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찡그린 표정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매력적으로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보기 싫은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유행이라 해도 우선 그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매에 맞는 분위기와 나이, 그리고 자신의 개성이 모두 종합적으로 모두 잘 어울리는가를 판단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분명히 자신의 나이와 체형에 잘 어울릴만한 유행이 있고, 그렇지 않은 유행도 있게 마련이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행을 무작정 따르다가는 자칫 옛 속담에 ‘삿갓을 쓰고 자전거를 탄다‘는 꼴불견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면 그저 사족을 쓰지 못하고 무조건 묻지마식으로 따라야 하겠다는 생각과 의식, 그것은 결코 조상대대로 이어온 우리 민족성의 자랑거리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은 분명 아닌 듯싶다.

그리고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유행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어딘지 모르게 천박하면서도 가볍게 보여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들을 볼 때 배알과 주관이 전혀 없는 마치 뼈가 없는 허수아비들의 허우적거림을 보는 듯한 가련한 느낌이 들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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