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령이 전해지고 있는 유일한 섬...충남 보령시 오천면 녹도(鹿島).

배에서 바라본 녹도 마을은 집들이 한방향으로 빼곡히 모여있어 정겹기만하다.
[청풍/이지폴뉴스]대청도·외연도·초망도·오도 등과 함께 외연열도를 이루는 섬 녹도(鹿島)는 섬의 모양이 사슴처럼 생겼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가 많고 급하게 경사진 곳에 마을이 있어 유휴면적이 적다. 한 방향에 층을 이루며 빼곡히 모여 있는 섬 마을 풍경은 정겹기만 하다. 만조 때를 맞춰 배들이 연일 드나드는 모습이 어촌 주민의 바쁜 일상을 보여준다.

녹도는 대천항으로부터 25km의 거리에 있는 0.9㎢의 조그만 섬. 지금은 63가구 150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50년 전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124가구 700여명이 넘을 정도로 마을이 호황을 누렸다. 300여척의 고깃배가 왕래할 정도였으며 술집도 10여개에 이를 정도로 즐비했다. 섬의 크기에 비해 어시장의 세력이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섬 속의 도시를 이룬 적도 있었다’는 것이 섬 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점차 육지로 떠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가구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인구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분교마저 폐교 됐다.

녹도의 주민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한다. 과거에는 조기잡이가 유명했다. 당시 녹도 조기는 바다에서 제일 먼저 잡히는 곳이어서 임금님 상에 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이제는 어종이 바뀌어 새우, 꽃게, 멸치잡이 등 다양한 어종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우럭, 해삼, 전복 등이 특산물로 나오고 있다. 전복과 해삼은 봄부터 가을까지 제주해녀들의 원정 채취를 통해 주민 소득을 올리고 있다. 최고점 106m를 정점으로 이뤄진 가파른 산지에서는 오래 묵은 더덕과 달래 등도 채취되고 있다.
녹도에서 갓잡아 올린 광어..

녹도주민들은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국내 유일하게 금주령이 내려진 섬이기도 하다. 금주령은 48년 전 동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법이다. 13년간 노인회장을 지낸 남성 최고령자 이규인씨(82)는 “50여 년 전 배가 많이 들어오고 술집이 즐비했을 때는 외지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며 “그러나 선주들이 술 먹고 아낙들에게 농락하는 꼴을 볼 수 없어 결국 마을 금주령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 뒤로 술집은 사라졌다. 그러나 11년 전 술파는 행위가 4집에서 적발돼 이회장이 직접 나서 보관된 138상자를 시가로 배상해 집집마다 분배해 나눠주는 등 2차 금주령을 실시했다. 녹도는 이제 가게도 없다. 술은 물론, 생필품은 각자 보령 등 육지에서 사와야 한다.
녹도는 관광지로 개발을 하기 위해 순환도로 개설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을 사업관계는 이장 김성룡씨(69)의 몫이다. 이장 김씨(69)는 “순환도로가 개설되면 주민들의 편의는 물론, 관광객들을 유치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재 녹도 순환도로의 개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녹도는 역사적으로 마한 때부터 사람이 정착했던 섬이다. 백제 때는 신촌현에 속했고 신라 때는 신읍현, 고려 때에 보령현에 속했다. 조선말기 오천군 하서면에 속했다가 1914년에 호도리·화사도리를 병합해 녹도리라 하고 오천면에 편입됐다. 녹도만의 독특한 점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땅 속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땅 위에 안치하는 초분(草墳)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유물로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가 있고, 석기·토기 등이 출토됐다.

▲도로안내 :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36번 국도-대천해수욕장 방면)→신흑동→보령항
▲배편안내: 대천항에서 호도, 녹도를 경유해 외연도까지 가는 신한해운(041-934-8772~4)
의 웨스트프론티어호가 하루 2회(8:10, 15:00) 운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남양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