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와 가까운 명소로 영화, 드라마 촬영 단골 장소

물지게를 지고 바다로 일을 나가는 아낙네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섬이 아니면서 섬으로 불리며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와 가깝고 시, 소설, 문학작품의 소재는 물론이고 미술, 영화, TV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오이도 섬을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지난 주말 이곳을 방문했다.

내가 오이도역에 도착한시간은 오전11시40분, 그러니까 우리일행이 청량리에서 10시에 출발했으니까 오이도역까지는 약1시간40분이 소요된 셈이다. 이곳에서 택시로 약10분정도 더 가야만이 내가 생각하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오이도의 명소 빨간 등대위에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섬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썰물 때라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광활한 갯벌모습과 그 속에서 자생하는 생물을 채취하는 사람만이 간간이 보일뿐 푸른 물결이 넘실되는 바다모습은 구경할 수 없었다.

택시가 정차한곳은 붉은색으로 단장한 등대 앞, 차에서 하차한 후 곧장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각종생물들을 즉석에서 조리하여 팔고 있는 아낙네들이 길 양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않아 관광객들을 상대로 싱싱한 회 맛을 즐기고 가라는 말을 연신 조아리고 있다.
오이도역을 알리는 역사 간판


이곳 상인들이 팔고 있는 생물대부분이 종류별로1만원어치면 3-4명이 그런대로 먹을 량이다. 일행 중 한명이 살아있는 주꾸미 맛 좀 보자는 말에 주꾸미5마리를 1만원에 구입하여 주인장에게 조리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주인은 살아있는 주꾸미5마리를 곧바로 뜨거운 물에 약5분정도 넣었다가 꺼내더니 토막 내어 초고추장과 함께 일행 앞에 내놓는다.

먹어보니 맛 또한 일품이었다. 과연 지금이 주꾸미 철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상인대부분이 물을 들통에 떠다 조리하는 관계로 청결하게 씻지 않고 조리하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을 느낀 것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선착장에는 정박중인 나룻배가 가득하다

선착장을 빠져나온 일행은 등대 옆에 자리한 수산물 시장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각종 활어들이 어항 속에서 손님 맞을 준미를 하는지 힘차게 노닐고 있다. 종업원들은 관광객들을 향해 원가로 준다며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굴파는 아낙과 손님의 정겨운 가격 흥정

발걸음을 몇 발짝 옮기려는데 어디선가 여인네목소리가 들린다. 내용은 밴댕이, 과메기, 뱅어가 혼합된 회를 1만원에 판다는 것이다. 나는 소리의 진원지로 발길을 돌려 아낙내의 유혹에 선뜻 지갑을 열고 여인이 권하는 생물을 구입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변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유혹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종업원은 내 뒤를 따라오면서 까지 유혹하고 있다. 나는 뒤따라온 종업원과 가격흥정을 하여 3종류의(민어, 광어 ,놀래미)활어를 5만원에 더 구입한 후 그곳에서 회를 만들어가지고 각종야채(기본5천원, 1인당추가2천원)와 매운탕(소;8천원, 중;1만원; 대1만2천원)만을 전문으로 끓여주는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2층 문을 열고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홀 전체가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회를 먹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인다. 우리일행도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않으니 곧바로 각종야채와 약간의 해물이 담긴 접시가 나온다.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들 생선회를 먹기 시작했다.

한참 먹다보니 어느새 접시가 비워지고 곧이어 나온 매운탕도 말끔하게 비웠다. 내생에 오늘같이 생선회를 많이 먹어 본적도 처음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민어회 맛은 지금도 잇지 못하고 입맛을 다지고 있다.

갯벌 선착장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식사 후 일행은 소화를 시킬 요량으로 바닷가방파제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바닷가 주변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 코를 자극한다. 또한 방파제주변에는 여러 행상들이 자리를 잡고 오가는 사람들에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해안을 배경삼아 기면 사진 (오른쪽 끝이 필자)

슬하에7남매를 두고 3년 전 부인과 사별한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사주 및 관상영업을 한다는 李 00씨(75세)와 이곳 오이도 섬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인물화 스케치를 해준다는 崔00씨(38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불어 상인들도 괘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봄철관광지 따라 상인들이 이동하는 관계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한편 이곳 지명에 대해 궁금하여 알아본즉 조선 초기에는 오질애(吾叱哀)로 불렸으며 성종조때는 오질이도(吾叱耳島)로 개칭된 후 정조조때 와서야 현재의 오이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오이도 섬의 모양이 마치 까마귀의 귀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오며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 이라고 불려진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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