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호(작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때가 엊그제 같기만 한데 어느덧 50년도 훨씬 지난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자동차들이 미국의 번화한 뉴욕 시가지를 빽빽하게 메운 채 달리고 있는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그때 이미 미국은 4명의 국민당 1대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마냥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 무렵 우리 나라에는 대도시에도 자동차의 수가 별로 많지 않아 어딜 가나 시가지가 한산하기만 했다. 그러니 지방이나 시골은 오죽했으랴.

기차는 물론이고 자동차 구경조차 못해 본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러기에 내가 살고 있던 시골 동네에 어쩌다가 자동차 한 대가 들어오게 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자동차 주변으로 몰려 와서 신기한 듯 자동차 구경을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도 그 후 얼마 후부터 자동차의 수가 차츰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몇 해 가지 않아 요즈음은 마침내 우리 나라도 뉴욕 못지 않은 자동차 보유국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엔 어디를 좀 멀리 가려면 며칠씩 걸려 걸어서 가던 곳, 그런데 요즈음은 언제든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몇 시간만에 마음 대로 오갈 수 있는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돌아온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요즈음은 여행을 갈 때는 물론이고, 농사꾼이 논에 물꼬를 보러 갈 때, 심지어는 좀 멀리 밭에 김을 매러 갈 때에도 고급 승용차를 이용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나날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달을 거듭하는 문명의 이기, 그 문명의 이기가 우리들의 삶의 질을 이토록 풍요롭고 편리하게 바꾸어 놓을 줄을 그 누가 꿈엔들 상상이나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어떤 물건이든 희소가치가 있을 때 빛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그처럼 구경조차 어려워 몹시 귀하고 소중하게만 여겨졌던 자동차가 언제부터인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자동차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제는 어디 어느 집 앞을 가도 주차 금지 표지판이 자동차를 천대하기가 일쑤요, 어느 고속도로 어느 시골 길을 가도 차가 막히고 잠시 주차를 하려 해도 마땅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유지비도 적게 들고 늘 고장 없이 속 썩이지 않고 잘 굴러가는 실용적인 자동차가 우리들에겐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나라처럼 새차와 중대형차, 그리고 외제차를 선호하는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별로 찾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그처럼 새차와 중형차, 그리고 외제차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차를 굴릴만한 능력과 여유, 그리고 그런 차들을 선호하는 막연한 취향 때문일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나라 국민들 모두가 권위 의식, 그리고 자신의 위신을 한층 더 높여 보기 위한 자존심과 허영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기에 요즈음엔 일류 호텔 정문 앞에는 물론이고, 어딜 가나 고가에 럭셔리한 중대형 자동차로 거리를 장식하는 우리 나라가 아니던가.

가까운 이웃 일본의 예만 봐도 그렇지 않다. 그 나라 장관 부인들도 아주 작은 600씨씨 경차를

즐겨 이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에도 아주 작은 장난감같은 경차들이 거리에 즐비하고, 비교적 생활의 여유가 있어서 살기가 좋다는 뉴질랜드도 이주 오래된 고물 자동차들이 아무 런 꺼림도 없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이 새차와 중대형차, 그리고 외제차를 선호하며 자랑스럽게 몰고 다니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비록 전세나 월세를 살고 있을 지언정 우선 중대형 고급 자동차부터 마련해 놓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 역시 벌써 오래 전의 일이 아니던가.

또한 사업을 어떤 사업을 좀 하려고 해도 반드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녀야만 한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 역시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닌 듯 싶다.

소형 차를 몰고 다닐 경우 은행 대출부터 받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며 또한 은행으로부터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기도 하는 나라라는 현실에

왠지 모르게 한 구석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자신의 능력과 여유가 흘러 넘쳐서, 그리고 자신의 취향이 굳이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고 반문한다면 더 이상 뭐라고 대답할 말은 없다.

문제는 일부 부유층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들 대부분이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요즈음 세계 경제는 하루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 일로를 내닫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에 우리 나라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불확실성한 마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아슬아슬한 나날의 연속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현재 우리 나라에 생존해 있는 엄청난 재벌의 어느 회장 한 분을 잠깐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는 하루에 1억원씩을 쓴다 해도 평생 다 쓰지 못할 엄청난 재벌로 알려지고 있다.

그에게 요즈음 누군가가 에쿠스 승용차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 선물로 받은 승용차는 휘발유값이 많이 든다며 지금도 중고 소형차를 즐겨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솔선수범하고 있는 검소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이 얼마나 우리들 모두가 한번쯤 반성해 볼 일이며 본받아야 할 태도인가. 그 회장은 젊었을 때 서울대 상대 재학 시절 운동화 한 켤레를 바닥이 떨어질때까지 신고 다녔다는 그런 지독한 분이었다고 한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 옛 속담이 있다. 제아무리 재벌이나 갑부라 해도 사치와 낭비, 그리고 허영심을 일삼는 생활 습관,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자멸을 부를 뿐이다.

오래 전의 국가 시책이 그러했듯 오직 근면, 검소, 저축을 생활화 하는 것만이 우리들 모두가 살 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명심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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