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수(편집위원)
우리나라의 가족사를 대표하는 행사가 있다. 출산, 관례, 혼례, 상례가 대표적인 행사로, 이를 통과의례라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기쁜 일과 슬픈 일로 나누어 축복을 해주고 위로를 해주는 미풍양속이기도 하다.

출산은 한 생명이 태어나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나라의 백성이 되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대문에 금줄을 두어 한 아이의 탄생을 알린다.

우리가정의 경우 백일, 첫돌은 물론 열 살이 될 때까지 백설기, 수수팥떡, 미역국, 흰밥을 소반에 얹어 아이가 자는 방 윗목에 두었다가 아이에게 아침을 먹임으로 그해의 생일은 시작한다.

관례는 아이가 성장하여 약관(15~20세)의 나이가 되면, 남자아이는 상투를 틀고 여자아이는 비녀를 찌르고 술 마시는 방법, 말하는 예절, 별호를 내려주는 전통 성년식을 말한다. 최근에는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해 만 20세가 되는 아이들을 별도로 축하해 주는 것을 말한다. 혼례는 인륜지대사라 하여 살아서 가장 크게 소문을 내는 행사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생산과 가족을 일구는 일이라 아주 경건하고 신중히 행한다.

상례는 육신을 떠난 영혼이 영의 세계로 무사귀환을 위한 의식절차로 잘 모심으로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행사이다. 우리 가족사에 있어서 나와 아내의 만남에 작은 과정이 있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만남에 있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를 한다.

부농이 아니었지만 당시 넉넉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정년기의 아버지는 지인의 소개로 어머니와 맞선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맞선을 보기 며칠 전 어머니가 살던 집 주변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이른 새벽 어머니의 집을 찾았고, 미명의 시간 펌프질을 하는 생 얼굴의 어머니를 보았고, 펌프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반하여 맞선 날짜를 앞당기고 초고속으로 결혼하기에 이른다.

당시 어머니는 음식을 하다가 데어 손가락에 붕대를 감았는데, 아버지는 맞선자리에서 붕대를 풀어 보는 해프닝도 벌였다고 한다. 우리 부부의 만남은 어떠한가. 꼼꼼하신 성품이었던 아버지는 며느리 자리가 나오면 먼저 나를 앞세워 처자가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 구멍가게 좌판에 앉아 그 처자의 성품을 가게 주인에게 묻고는 하셨다.

그렇게 3번의 맞선을 보고 네 번째 며느리 감이 지금의 아내이다. 아버지는 나도 모르게 장인이 운영하던 가게도 둘러보고 시장통 사람들에게 아내의 품성을 물어보고 와서는 무조건 결혼을 하라고 채근하셨다.

맞선 날 나는 아내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시할머니, 시부모, 시집을 안 간 시누이가 셋이 있는데 괜찮겠느냐.’ ‘단칸방에서 시작해야 하고 연탄아궁이가 5개인데 그것을 갈 수 있느냐.’ 아내는 손이 아프다며 손을 내밀었다. 아내의 내민 손을 만지자 ‘다 낳았어요’ 하며 모든 답을 대신하니 더 이상 무슨 절차가 필요할까.

우리는 86년 1월 23일에 만나 2월 15일에 약혼식을, 5월 11일에 결혼식을 하는 초스피드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불가에서는 백년에 한번 날아오는 새 한 마리가 달만한 쇠구슬을 쪼아 없어질 때 만나는 인연이 부부의 연이라 했다.

아름다운 가족을 구성하는 첫 만남을 추억이라 여기지 않을 이 없지만 아이들에게 부부의 연을 말해 주는 작은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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