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와 맞는 이의 신사협정의 약속이라면...

한철수 편집위원
우리나라 교육행정에 있어서 십 수 년 전부터 보수와 진보라는 교육이념의 격랑 속으로 빠졌다. 아이들에게 교육에 필요한 회초리 또한 사랑의 매인가 체벌인가로 달팽이 뿔로 대립각을 세웠다. 

회초리하면 아버지의 싸리가지와 선생님의 출석부사이에 끼운 작은 몽둥이와 훈련소의 지휘봉이 기성세대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의 존재이다. 때리는 이는 회초리를 들었다하고 맞은 아이는 매라하는 그 기억의 부스러기를 통해 회초리에 관한 단상을 이어나간다.

-아버지와 회초리

아버지와 회초리는 약속이었다. 여염집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지금처럼 어머니의 몫이다. 베이비붐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치맛바람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대부분 아버지들은 산업의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부족한 현장을 떠나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의 탄광으로 중동의 모래사장에서 고단한 삶을 마치고 잠시 귀국하여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어른을 공경하는 아이가 되어있을 거라는 자기최면에 걸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의 아이들은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또는 아버지의 바람처럼 많은 아이들이 온순하지 못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만에 돌아와 아이들의 버릇없는 모습에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었다. 늘 어머니와 가까운 가족의 품안에서 어화둥둥 지낸 세월이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았고,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다하고 맞은 아이는 매를 들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때리는 자와 맞는 자의 생각과 이치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회초리든 매든 들었을 때는 화풀이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은 불멸의 진리인 것이다.

-선생님의 출석부와 회초리

김홍도의 "서당"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 선생님과 출석부 그리고 회초리는 교육현장의 상징이었다. 좁은 교실에서 나름대로 놀이를 하다가 반장의 ‘차려’라는 구령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미처 자리에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은 회초리 대신에 창문을 여는 벌을 받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풍경이다.

그리곤 분필로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고는 뒤를 돌아서자마자 회초리로 교탁을 두드리는 것이 수업의 시작이었고, ‘주번 칠판 지워’하고는 탁자를 치는 것이 수업의 끝이었다. 그리고는 교실 문을 들어설 때처럼 회초리를 출석부에 꽂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 보편적인 교사의 모습이다.

때로는 숙제를 안한 아이, 문제를 풀지 못한 아이, 말썽을 피운 아이의 손바닥과 엉덩이를 때리는 회초리가 아이들에게는 매로 변하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에게 맞은 부위를 부모에게 보이면, 어머니는 혀를 찼으나 일반의 아버지들은 그 부위에 또 매를 가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아이는 자기의 실수든 아니든 한 가지 일로 두 번 매를 맞는 경우이고 선생님과 아버지는 한 번씩 회초리를 든 것이다.

-회초리로 자란 학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우리는 나쁜 행동이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에 있어서 세 단계로 훈계를 하는데, 약한 단계는 ‘꾸중’이며, 다음 단계가 ‘야단’이며, 마지막 단계가 ‘매’인 것이다. 꾸중은 ‘잔소리’로, 야단은 ‘혼났다’ 로, 매는 ‘패다’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힘 있는 자의 가해와 힘없는 이의 피해에 따라 표현하는 용어가 달라지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또 나타난 장풍교사의 폭력. 그로인해 대부분의 현장교사는 움츠리고 교육현장은 또 혼돈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는 법만큼이나 중시여기는 ‘신사협정’이 있다. 학년 초는 지났으니 여름방학이 끝나는 새 학기를 맞이하여 학부모들과 회초리라는 사랑의 매에 대해 학부모, 아이, 교사들과 협정을 맺는 방법은 어떨까하는 제안을 해 본다.

학부모들에게 회초리와 매의 좋은 추억이 있듯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지혜가 있을 때 달팽이 뿔의 싸움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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