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오후가 달아나요'는 왕숙천이 배경

-5대를 넘은 남양주사람...구리에서 10년을 넘게 살아
-언니가 시인...문효치 시인의 영향을 받아
-그저 글만 안고 살고 싶어...구리시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고 파
 
 

전북도민일보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자 이미자 시인.
문학새내기들이 문학의 최종목표를 설정할 때는 신춘문예를 떠올리고 그 목표를 향해 고뇌하고 좋은 절구(絶句)를 위해 수 없이 많은 절규(絶叫)한다. 그리고는 주변문인과 스승에 졸작이라며 작품을 건넨다. 그리곤 커다란 봉투 한 켠에 '신춘문예작품재중'라는 스탬프를 찍는다.

우리나라에는 1만5천명이 넘는 시인이 있다. 년간 중앙을 비롯해 지방신문까지 시부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한 획을 긋는 이가 30명 남짓이니 그 영광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올해에도 그 영광의 소식이 까치소리로 들려왔다. 구리시 인창동에 거주하면서 문학의 끈을 놓지 않은 이미자 시인이 전북도민일보에 시 부문 신춘문예 당선자가 되어 시인의 반열에 섰다.

구리문인협회가 주관한 문예대학과 문화센터를 통해 문학의 끈을 다시 잡았고, 문효치 시인을 문사(文師)로 삼고 아직도 시작(詩作) 열정을 위해 뒤늦은 문학공부를 하고 있다.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이미자 시인을 만나 그녀의 문학과 삶을 나누어본다.(글쓴이 주)

먼저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한다. 지금 거주하는 곳은

-오른쪽엔 동구릉이 있고 왼쪽엔 왕숙천이 흐르는 인창동에 산다. 한 곳에 붙박여 있는 스타일이라 벌써 10여년이 되어간다. 그래인지 나의 작품은 구리와 왕숙천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 이미자 시인의 모습과 성장배경은

-남양주시에서 5대째 살고 있다. 대농의 집안이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농토 관리에 바쁘셨고 대가족인 우리 8남매는 스스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에 난 막내다.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번 씩 글 쓰는 공간이 교실 뒤편에 있었다.

그곳은 한주 동안의 일들을 기억에 남게 써 붙이는 곳이었다. 나는 그 글을 붙이기 위해 매 주를 기다렸다. 어느 때는 일기를 잘 쓴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골의 산과 들, 일상이 놀이의 생활인 나에게 그러한 칭찬이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칭찬을...’ 의아했다.

청소년시절 문학적 영향은

-청소년 시절 책꽂이에 꽂혀 있던 오빠들의 책들과 언니들의 책은 알지도 못하고, 혹은 알고 그저 깨알 같은 글씨를 탐독했을 뿐이다. 문학소녀는 전혀 아니었다. 성장 후에도 언제나 신문과 책들을 가까이 했지만 문학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문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언니가 시인이다. 퇴고를 막 끝내기 전 한번 객관적인 눈으로 읽어 봐 달라는 언니의 말에 솔직히 귀찮았었다.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잠재적으로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의 관점이 옮아간 듯하다. 문학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면 잘은 못해도 어느 정도는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예전에 구리시에서 시창작 공모가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쓴 시를 써 봤다. 그런데 수상을 하게 되었고 이제 '시를 써도 되나'라는 의문을 그때 가졌다.

하지만 이제는 중독 수준이다. 노후까지 글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문학적 소질이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누구에게 사사를 받았는지...그리고 현재 문학적 영향을 준 사람은

-소년시절 사람들이 왜 시를 읽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문학적 영향을 준 사람도, 문학적 작품도, 내게는 싱거우리만치 하나도 없다. 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러한 가운데 문효치 교수님과의 인연이 있었고 시를 썼다.

또한 맹문재 교수님과의 인연은 문학의 깊이, 넓이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강의를 듣는 내내 밑줄을 긋고 싶은 내용이 참으로 많았다. 이것이 내가 무한히 문학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감사하다.

요즘은 김경주 시인과 조연호, 황병승 시인의 작품을 탐독하고 소설은 박민규 소설가의 작품도 눈여겨본다. 그러나 그러한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녹여들까, 때로 겁이 난다. 시인에게 있어 개성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항상 조심스럽다.  

강진 문학기행 중 떠오른 싯구를 메모하는 이미자 시인.

 구리문예대학이 이미자 시인에게 어떠한 기억으로 남았는지

-문학을 하기 전에는 항상 문화센터를 다녔다. 무엇을 배우러 간다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특히, 내가 관심이 가는 것을 배우러 갈 때는 두근거림이 존재했다.

그런데 모든 문화센터에서의 과정이 끝나면 다음엔 무엇을 배우지...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런 때에 구리문예대학에서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리문예 대학에서의 배움은 단기 코스라 아쉬움을 남기고 그 해에 접게 되었다.

이번 전북도민일보가 선택한 작품과 배경은?

-전북도민일보 당선작은  "오후가 달아나요"로 상상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시창작 초기에 쓴 글로 퇴고는 했지만 당선 통보가 왔을 때 적잖이 놀랐다.

내가 사는 곳에는 학이 날아오고 물고기 떼들이 톡톡 튄다. 한강과 연결된 왕숙천이 발아래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호수 같다. 도서관을 오가며 아차산을 바라보며, 나의 상상력은 무한히 넘어와 마음의 배경이 되고 상상의 배경이 되는,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투영되는 곳, 나의 시가 갖는 안식처가 되기에 오후 한 때를 그려봤다.

신춘문예 당선은 문학인에게 큰 영광인데...앞으로 문학인으로의 각오는

-항상 공부하는 자세일 것이다.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갖는 최선의 각오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문학동아리나 단체는

 -주성대학교 동문들의 모임인 문창과 문학회가 있다. 그 외 단체는 가급적 활동을 삼가고 있다. 글만 안고 싶다.

이미자 시인은 거창한 좌우명은 갖질 않는다. 그저 예전과 같이, 지금과 같이, 앞으로 올 시간에 나의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갈 것이며, 이것이 지금까지 그녀의 삶이다. 그리곤 남ㅁ편과 아들, 이렇게 셋이서 가끔 날아오는 흰 새를 바라보며 즐겁게 구리시에 살고픈 작은 소망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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