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동화세상(15편)....소년과 스님 

밤새 눈이 내렸습니다.
껑충 큰 전나무 머리에,
가래떡을 척척 걸쳐놓은 것 같습니다.
양 볼이 통통하고 볼그레한 소년이,
설국으로 변한 전나무 터널을 걷습니다.
전나무 어깨 틈새로 햇살이 비껴듭니다.
숲은 적막합니다.
쏴아- 바람이 가끔 숲을 흔듭니다.
나무 냄새가 향긋합니다.
소년은,
향기 실은 바람에 샤워를 하며 숲길을 걷습니다.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걸으며,
마음의 때를 씻어냅니다.
낮은 골짜기를 따라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습니다.
발목까지 쌓인 눈길을 걸으면,
발밑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문득 풍경이 맑게 울립니다.
그 자체가 선경인 산사에서 올라옵니다.
밤새 눈까지 내려 설국을 이룬 산사의 비경은,
무엇으로 담기에도 부족합니다.
독경소리 그윽한 산사의 아침.
배고픈 새들만 분주히 날아다닙니다.
단청 올린 처마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산새들이 젖은 깃털을 말립니다.
소년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옵니다.
산사 옆 눈밭에,
한 스님이 오른 팔을 어깨 높이만큼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눈덩이 만해진 호기심을 굴리며,
소년이 산사로 내려갑니다.

스님이 나머지 팔도 벌립니다.
그러자 깃털을 말리던 작은 산새들이,
눈밭으로 날아옵니다.
홀로 서 있는 스님의 주위를 돕니다.
반갑다는 듯이 짹짹거리며 돕니다.
나이든 비구니 스님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더 벌립니다.
양팔의 손바닥을 짝 펼칩니다.
작은 산새들이 그 손바닥 위에 앉습니다.
이 영(동화작가)

스님의 그 손바닥에는,
한 줌의 쌀이 올려져 있습니다.
“여기 새들은, 이렇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단다.”
다가온 소년에게 스님이 말합니다.
“왜 안 무서워하지요?”
신기해서 소년이 묻습니다.
“사람이 해치지 않으니까.”
대답하는 스님의 얼굴 가득 해맑은 웃음이 핍니다.
외진 산사의 눈밭에 번집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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